9월에 들어서도 더위가 물러서지 않는 캘리포니아. 하지만 한국에서는 벌써 하루가 다르게 선선해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직은 성급하지만, 그래서 더욱 캘리포니아의 가을이 기다려지는 듯하다.
서던 캘리포니아(Southern California), 남가주는 사계절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을이면 노란 물감을 뒤덮은듯한 숲을 볼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다. 10월 문턱에 들어서면 온통 노란 아스펜 가득한 비숍(Bishop)이 바로 그곳이다.
비숍은 캘리포니아 이스턴 시에라(Eastern Sierra) 지역에 있다. 남북으로 길게 놓인 국도 395번 선상에 있는 오래된 시골 마을이다. 이곳은 캘리포니아 중심에 솟아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동쪽 부분에 있다고 해서 ‘이스턴 시에라’라고 한다.
매년 절정을 맞추어 가기가 쉽지 않지만 9월 말에서 10월 초면 노랗게 옷을 갈아입는 아스펜의 숲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단풍은 빨갛고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섞여있지만 이곳은 산등성이가 온통 노랗다. 바람이라도 불면 카드섹션을 하듯 흔들리는 노란 이파리들이 달랑거리며 소리를 내는 것만 같다. 아스펜은 주로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예전 콜로라도의 텔루라이드를 들어가는 길에도 몇 시간을 달리도록 온통 노란 아스펜 산이었다.
엘에이에서 395번 국도 북쪽 방향으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미국의 시골 국도이다. 중간중간 서부의 마을들을 만날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가을, 역시나 이 길엔 사람들로 붐빈다.
비숍에서 노란 아스펜을 보기 위해서는 레이크 사브리나(Lake Sabrina)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서부가 대부분 그렇듯, 단풍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사막 같은 지역을 30여분 달려가다 보면 서서히 노란 물결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노란 아스펜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가장 큰 호수, 사브리나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좀 덜 알려지고 단풍이 늦게 까지 남아있는 노스 레이크(North Lake)를 소개한다. 몇 년 전 들렀을 때 이곳에서 55년부터 살았다는 현지인의 추천으로 갔던 나만의 장소이다. 그는 노란 아스펜을 보기 위해 한발 늦은 우리에게 North Lake를 귀띔해 줬다. 비숍의 노란 아스펜은 너무 일찍도, 너무 늦게도 절정을 만나기 어렵다.
노스레이크(North Lake) 나만의장소
노스 레이크는 사브리나 호수로 가기 직전,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로 끝까지 올라가면 캠프그라운드 파킹랏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호수를 따라가면 고요한 풍경 속에 노란 아스펜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노란 아스펜은 그대로 노스 레이크에 담겨있다. 호숫가를 따라 돌무더기를 밟고 가다 보면 아름다운 경치에 끊임없이 카메라를 누르게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집에 와 보니 호숫가를 따라 걷다 찍은 사진이 당시 맥북 바탕화면과 같다는 걸 알았다. 바로 노란 아스펜이 한창일 때 같은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파란 하늘은 나의 사진이 더 좋았다.
여행이란 이렇게 계획하지 않은 우연이 함께 해줄 때 더 행복한 추억을 안겨준다. 인터넷과 SNS가 너무 잘 발달되다 보니 우리는 모두가 같은 여행을 할 때가 많다. 틀에 박힌 듯 누구나 가는 그 장소를 가야 할 것만 같은 여행 말고, 우연히, 누군가에 의해 계획 없던 장소로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겨보는 여행이 더 좋다.
비숍의 유명한 빵집, 에릭 샤츠(Erick Schat’s)
이곳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하나 더 있다. 1938년부터 이어져온 유명한 빵집 에릭 샤츠(Erick Schat’s) 베이커리. 오래전 금광을 찾아 서부를 오던 이민자들에게 고향의 맛을 전해주던 빵집이다.
옛날 스페인과 프랑스 인근의 양치기 목동들이 주로 먹었다는 전통의 빵인 쉬퍼더 브래드(Sheeperder Bread)가 이곳의 유명한 빵이다. 역시나 빵을 사기 위해 들르는 이들로 빵집은 항상 붐빈다. 특히 여기 빵들은 옛날 방식을 따르고 건강식 자연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어김없이 10월이면 캘리포니아의 가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 옷을 갈아입고 노란 아스펜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유난히도 더웠던 이번 여름을 떨쳐 버리기 위해 올해도 노란 아스펜 숲을 보러 가야겠다. 그리고 잊지 않고 고소한 빵 냄새가 유혹하는 비숍의 빵집도 들러야겠다.
by 50plus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