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 근교의 헌팅턴 라이브러리는 대부호인 헨리 헌팅턴 일가의 저택을 사후에 기증하여 현재 정원, 식물원, 고서가 전시된 서고, 그리고 미술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철도, 부동산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헌팅턴 일가는 원래 동부 출신이었다고 한다. 동부에 살던 그들이 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보내기 위해 지은 별장이었다가 이주한 집이라고 하는데, 개인의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크고 아름다웠다. 건물뿐 아니라 고서, 예술 작품 등도 많아서 그 기부의 규모가 정말 엄청나다.
미국에는 이런 헌팅턴 라이브러리 같은 거대한 집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기부문화가 보편적으로 정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기부자에겐 보상으로 확실한 그 표시를 해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기부하면 명단공개를 하고, 지나는 경찰차에는 간혹 어느 단체에서 기부한 경찰차임이 쓰여 있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경찰이나 소방서 등에 기부하면 스티커를 주어서 차에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는 것이다.
“역시 자본주의인데…?” 라며 나는 웃었다.
기부문화가 정착되는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제 혜택을 줄 테니 그것을 이유로 기부하는 이도 있을 테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기부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문화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부를 한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표시를 하고, 기부자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헌팅턴 라이브러리는 이곳에 사는 언니의 대학 동창이 초대해주었다. 긴 여행을 해보았으니 혹시 미국에서 살아봐도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진 않았느냐고 K 언니가 물었을 때 나는 웃었다. 형제가 외국에서 산 지 오래이므로 한 번쯤 이민을 생각해보았을 법도 하지만, 우리 가족 중 누구 하나도 외국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외국은 여행하는 곳일 뿐 살아가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는 교포들의 생각은 궁금했다. 이민자들은 나처럼 한국에서 태어나 계속 사는 사람과 달리,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로 살 곳을 선택해 떠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이 나아갈 방향을 정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가끔 했다.
물론, 태어난 나라에서 계속 사는 이들도 자신의 의지로 많은 것을 선택하며 산다. 하지만, 다른 언어와 문화, 그리고 인종이 뒤섞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또 다른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쉽지 않은 어려움의 무게를 온전히 짐작하는 일은, 내게 불가능하다.
정원을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K 언니가 내게 물었다.
“미국 여행하러 와서 이곳저곳 가본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내가 미국에서 사는 삶이 어떠한지 그들에게 궁금했던 것처럼 그들도 여행자인 내게 이런 것이 궁금한 것이다. 단 하루도 집에 있던 날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녔는데 어디가 제일 좋았더라, 잠시 생각해보았다. 나머지 한 주를 더 보내고 LA 공항에서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다시 생각해본다면 어디가 제일 먼저 떠오를까.
오늘은 헌팅턴 라이브러리의 아름다운 정원을 걸었던 하루였다. 미국의 동부에서 반대편 끝인 서부로 이주해 이 거대한 저택에서의 삶을 살았던 헌팅턴 일가를 생각했다. 그들이 살았던 이 멋진 곳은 이제 수없이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가 되었다. K 언니는 이 크고 멋진 곳에 일본 정원, 중국정원도 있는데 한국정원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캘리포니아에 한국교포가 그리 많은데 아쉬운 일이다. 나 역시 언젠가 이곳에 한국정원도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