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전 일로 나의 기억력이 따라가지 못하지만,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어릴적 나처럼 책꽃이 한켠에 자리했던 세계문학전집을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지구 어느 곳에 있을 이야기쯤으로 여기며 어릴 적 우리의 삶과 다름에도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이 읽었을 유명한 이야기 책. 그 이야기의 작가인 마크 트웨인의 집을 찾았다.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에 있는 그의 집은 그 책 이미지들과는 달리 화려한 저택이라 약간은 의외였다.
마크 트웨인 하우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세계 최고의 역사적 주택 10곳” 중 하나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뮤지엄과 함께 있는 마크 트웨인 하우스 저택은 가이드 투어로만 가능한데 그의 딸이 직접 가이드 해준다는 말에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딸이면 나이가 꽤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순간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색다른 경험 ‘리빙 히스토리 하우스 투어(Living History Tours)’
수지 클레멘스 : 마크 트웨인의 딸 (Susy Clemens : Mark Twain’s Daughter) 가이드 투어는 마크 트웨인의 딸 역할을 하며 가족의 역사와 저택에 대해 설명해주는 전문 가이드 아가씨였다. 마크 트웨인은 필명이며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 (Samuel Langhorne Clemens)이다. 하지만 아주 유익한 가이드 방법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74년 그의 가족이 이 집에 거주할 당시의 복장과 심지어 말투도 당시의 억양을 사용해서 생생하게 가이드를 해준다. 관람객은 질문도 마치 딸에게 물어보듯 당시의 생활상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가이드는 마치 딸이라 착각할 만큼 우리아버지는 ~ 하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부인역할이나 또다른 딸이 하는 투어도 있었다. 이렇게 투어를 하니 좀더 흥미있게 역사를 체험하는 좋은 아이디어란 생각이 든다.
하트포드시의 옛 다운타운의 비좁은 길을 끼고 한 코너에 자리잡은 그의 집은 생각보다 크고 화려한 저택이다.
마크 트웨인의 가족이 1874년부터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당시로서는 새로 지은 최신식의 현대적인 주택이었다. 빅토리아시대풍 저택으로 3층 구조의 11,500스퀘어피트로 25개의 방이 있다. 그의 가족은 주황색과 검은색 벽돌로 지어진 이 집에서 17년간 살았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3층까지 연결된 계단이 있고 저택의 벽에는 각 방마다 다른 디자인의 스텐실로 무늬를 낸 벽지로 마무리되어있다. 문틀이나 벽난로 등에도 나무로 직접 조각하여 만든 실내 장식이 얼마나 집에 공을 들였는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2층은 세 딸을 위한 침실과 공부를 위한 공간이었지만 이 집에서 큰딸을 일찍 여의 기도 했단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작가는 후에 딸에 대한 기억 때문에도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이 글을 썼던 3층 당구대가 놓인 Billiard Room
3층은 마크 트웨인이 글을 쓰며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당구대가 있고 책상이 놓여있었다. 그는 집에서 글을 쓰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이 이곳에서 쓰여졌다.
이 저택은 그가 일생동안 아내와 세딸과 함께 가장 행복하게 지냈던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크 트웨인 역시 그의 인생에서 Hartford 집에서 가장 행복하게 보낸 시기였다고 했다. 그는 투자로 인해 파산을 하면서 1891년 유럽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결국 1903년에는 이 집을 매각하게 되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며 마크 트웨인 하우스는 주인이 여럿 바뀌어 다시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 되어진 곳이긴 하지만 유품들을 모아 당시의 모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가 중 한사람, 마크 트웨인
그는 1835년 플로리다에서 태어나 4살 때 미시시피 강 유역에 있는 미주리주의 한 작은 마을로 이사했다. 당시 노예제도가 있던 이곳에서의 어린시절이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11살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학교를 그만두고 신문사 인쇄공으로 일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미시시피 강을 운항하던 증기선의 항해사로 일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남북 전쟁으로 인해 강을 따라 운행하는 모든 교통이 중단됨에 따라 그의 일도 끝이 나면서 우여곡절을 겪은 후 작가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결국 그는 11살까지의 학력으로 동화작가이자 미국이 문화를 풍자하는 작가가 된 것이다.
그의 저택과 함께 있는 뮤지엄에서는 그의 삶에 대해 더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출판으로 인해 큰 돈을 벌고 이곳 하트포드에 집을 짓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인쇄업이 번창하던 도시였던 이곳에서 인쇄기계에 투자해 파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by 50plus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