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계곡이 불이 붙은 듯한 붉은 바위들로 가득한 곳이 있다. 바로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밸리 오브 파이어(Valley of Fire) 주립공원이다.
인공의 불이 가득한 도시, 라스베가스에서 15번 프리웨이를 북쪽으로 오르다 보면 커다란 인디언 기념품들을 파는 기프트샵과 함께 주유소가 있다. 그 옆으로 11마일을 가면 자연이 만든 붉게 이글거리는 불의 계곡이 나온다. 해가 내려가 노을 지는 주립공원 입구 언덕을 넘으니 계곡은 제대로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주립공원 안에서는 캠프그라운드를 제외하고 오버나잇 캠핑을 할 수 없다. RV캠핑장과 텐트 캠핑장 모두 선착순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First Come First Serve’이다. 저녁에 도착했으니 캠프그라운드는 자리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주립공원 밖으로 나와 오늘 밤은 자연 속에서 보내야 한다. 하지만 벌써 괜찮은 장소에는 몇몇 캠핑카나 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도 내 앞마당이 되어줄 곳을 찾았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캠핑카를 세우고 지내는 것을 분덕킹(boondocking)이라 한다. 오늘 밤만큼은 눈에 들어오는 골짜기의 모든 땅이 내 앞마당이다. 잔뜩 부풀어 오른 대보름 달은 붉은 계곡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다.
다음날,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밸리 오브 화이어 주립공원을 들어가는 입구에 직원이 없었다. 입장료는 공원 입구에 비치되어있는 봉투에 돈을 넣어 셀프 페이 스테이션에 넣었다.
제일 먼저 캠프그라운드로 달려 들어가 매의 눈으로 사이트를 살피는데 어느 노부부가 주섬주섬 정리를 하고 있었다. 역시 나이 든 사람은 아침 일찍 움직인다. 이곳 RV 캠프그라운드에는 하수시설은 없지만 그래도 다행히 물과 전기가 공급된다. 캠프 사이트는 아마도 올해의 캠핑장소 중 단박에 1위를 차지할 명당이다. 눈 안에 들어오는 드넓은 자연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오늘의 선물을 받아도 될까 싶게 감사하다.
해가 지는 시간, 블루 아워(Blue Hour)의 캠핑카 앞마당은 자연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자연을 마주할 때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풍경을 보며 천국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적이 있었다. 그랜드 티톤 아래 호수가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주립공원이라 하기엔 너무도 넓은 밸리 오브 파이어
마우스의 탱크 (Mouse’s Tank)와 레인보우 트레일 (Rainbow Trail) 모두 간단하게 1마일 내외로 돌아볼 수 있는 트레일이다. 하지만 온통 붉은 모래 밭길이다. 연한 샌드스톤이 오랜 세월 깎여서 고운 모래밭을 만든 이유다.
트레일에서 운 좋게 이곳의 터줏대감인 주인을 만났다. 바로 대대로 이곳에 살아왔을 뿔 달린 염소 가족이다. 이방인인 우리는 허락 없이 숨죽여 사진 몇 장을 챙기고 조용히 떠났다.
하지만 이곳은 사람이 주인이었던 적도 있었다. 바로 그 인디언들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흔적만 붉은 돌 위에 남아있다.
미서부의 국립공원을 가면 대부분 겪는 일이지만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셀폰 사용은 포기해야 한다. 친절하게도 국립공원 내에 딱 한 곳, 파킹랏 3번에서 된다고 알려주는 표지판이 반가웠다. 그 지점에서 정말 안테나가 쏙 나타났다가 지점을 벗어나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생생한 현장 소식을 전하고 싶다면 이곳에 들렀을 때 잊지 않기를 추천한다.
3번 주차장에서 트레일을 걸어 파이어 웨이브로 갈 수 있다. 도대체 암석들 위에 어떻게 그런 물결무늬가 그려질수 있을까.
오랜세월에 덮여있던 흙이 점차 걷어지며 속살처럼 웨이브를 가진 바위산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인간의 나이 따위는 점도 안되는 세계다. 몇백만년, 몇천만년 그리고 몇억만년 수준. 그러니 모든 자연물이 경이로운 존재다.
웨이브에서 계속 트레일을 더 걸어들어가니 표지판에는 없는 핑크캐년을 만났다. 예전에 갔던 엔틸롭캐년과 같은 핑크빛 계곡이 있다.
거대한 돌 사이에서 풀이 한 줌의 모래를 움켜쥐고 살고있는 생명력은 놀랍기 그지없다.
바위틈 사이 하찮게 보이는 손톱만 한 검은 이끼 조차도 7년 이상 몇백 년까지도 걸려 생긴 것이라 한다. 생명이 뿌리를 내리는 근원이 되는 것이라 하니 내 발하나 딛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못내 아쉬워 떠나는 날 새벽, 다시 찾은 밸리 오브 파이어. 태양은 대지를 깨우며 남아있는 어둠을 긴 그림자로 질질 끌어내고 있었다. 차도 사람들도 없는 고요한 밸리 오브 파이어의 아침은 그렇게 다시 수억 년이 될 날 중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by 50plus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