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은 왠지 모를 낭만이 있다. 시대가 변해 아무리 빠른 기차가 나와도 옛 감성의 잔재로 기차여행은 시간을 거꾸로 달리고 싶게 만든다. 그렇게 모든 이에게 기차에 대한 추억만큼은 항상 어린아이와 같다. 그것이 이곳 콜로라도주 듀랭고를 찾는 이들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겨우 주경계 위로 올라앉아 콜로라도주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도시 듀랭고가 바로 그런 우리를 옛날로 데려다 놓는 곳이다. 그래서 산으로 둘러쌓인 작은 마을에 들어서면 누구나 느긋한 마음과 여유로운 감성을 갖게 되는게 아닐까 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의 얼굴이 말해주는 듯 하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가보면 메인 (Main Ave.) 길을 중심으로 겨우 몇 블럭 안 되는 읍내 정도의 마을이지만 모든 흥미로운 것들이 다 있는 것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이 작은 마을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추억팔이로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부터 은퇴한 시니어까지도 이곳에서는 각자의 취향에 맞춰 즐길 수 있게 된다.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도 이곳에선 제각기 다양하게 흘러간다.
길가 야외에 놓여진 마차모양 크레페 가게도 듀랭고에선 낭만과 여유를 뿜어낸다.
1887년에 지어졌다는 고풍스러운 스트라터 호텔(Strater Hotel)이 가장 중심가에서 듀랭고와 세월을 함께 한다. 오래전 혹독한 추위가 있는 겨울이면 이 인근 오지마을의 가족들이 집에서 생활하는 대신 몇 달씩 이곳에서 묵기도 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 아니어도 타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이곳에서 채워가려는 희끗희끗한 흰머리의 관광객들이 다녀간다.
세월의 시간을 뚫고 용감하게 로비를 둘러보러 몸을 들이밀어 본다. 호기롭게 들어선 로비는 오래된 유럽의 호텔처럼 무척 작아 살짝 낯선 동양의 방문객이 눈에 뜨일까 조심스럽다. 객실까지는 아니어도 로비에서 충분히 호텔은 그 역사의 진가를 발휘한다.
작은 로비에는 소품 하나까지도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세월을 뒤집어쓰고 있다. 천정의 조명이며 벽지, 나무로 만들어진 집기들이 호텔이 아니라 박물관 같은 분위기이다.
이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을 호텔 안 우편함은 긴 세월 동안 누군가의 애절한 내용이 담긴 편지를 얼마나 많이 품었을까 싶다. 또 긴 세월 많은 이가 좁히지 못할 거리를 목소리로 전하던 사연을 모두 들었을 공중전화 박스는 우리가 내뱉는 감탄사만 조용히 듣고 있다.
그런데, 사실 듀랭고 마을이 존재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진짜 명물은 기차다. 듀랭고는 오래전 실버톤(Silverton)과의 노선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샌 후안(San Juan) 산맥에서 대규모 광산의 채굴이 시작되며 험준한 지역에는 캐낸 광석을 운송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1880년 45마일의 실버톤(Silverton)까지 거의 3천 피트를 올라가는 협궤철도가 놓이게 되었다. 건설비용을 줄이고 산악지형에 알맞게 기존 철도보다 폭이 좁은 협궤열차를 놓게 된 것이다. 철로가 놓인 이후 20년간 실버톤 인근은 호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산으로 일어난 경제의 열기가 식어갈 즈음 1940년, 50년대에 할리우드의 서부 영화를 촬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듀랭고 역 뒤쪽에 무료 기차박물관은 이곳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끝없이 꺼내져 나오는 이야기보따리처럼 듀랭고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실버톤의 마지막 남은 광산이 1990년대 초에 문을 닫은 후 이제는 완벽하게 관광목적이 되었다. 현재는 Durango & Silverton Narrow Gauge Railroad라는 이름으로 계절마다 디젤과 증기 열차 등 다양한 관광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그렇게 이제는 광석을 운반하는 대신 매년 수십만 명의 추억을 담아가려는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그래서 철도관광으로 인해 100년 전 광산 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보다 오늘날 더 많은 일일 열차가 Durango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곳은 미국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얼마 남지 않은 협궤철도 중 하나가 되었다.
몇 달 전부터 해야 하는 기차 예약은 쉽지가 않았다. 어릴 적 기차를 무척 좋아했던 아들처럼 그렇게 기차를 좋아할 손주가 생긴다면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는 미래가 주어질지도 모르겠다.
by 50plus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