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미리 계획한 일정에 따라 그 장소에 도착하는 것만이 좋은 여행은 아닌 듯 하다. 나의 여행은 미리 철두철미하게 계획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여행이 때로는 의도하지않게 더 흥분되는 순간을 만들어 주곤 한다. 바로 이번에 우연히 가게된 스페인 어느 시골 농장주의 집같은 라 포사다(La Posada)호텔처럼 말이다.
그렇게 전혀 계획하지 않아도 때로는 멋진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기도 하는 것이 여행의 진짜 묘미가 아닐까.
루트 66, 윈슬로를 다시 가다
아리조나주의 윈슬로는 미국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서부 개척시대에 중심이 된 루트 66가 통과하던 마을이다. 물론 지금은 그 옛날 시끌벅적하게 서부로 몰려들던 이들은 사라지고 마을 사거리 한켠의 기념품가게 속 물건들만 옛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코너 한 곳만은 아직도 미 전국에서 왔다는 중년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 있다. 바로 이글스(Eagles) 노래 속 “Take it Easy”의 그 장소이다. (윈슬로에 대한 지난 글 더보기) 여행 중 40번 프리웨이를 내려 몇년만에 다시 들른 윈슬로 한 코너엔 여전히 50대를 훌쩍 넘겨보이는 사람들로 붐볐다.
스페인 농장주의 집을 닮은 라 포사다 호텔
윈슬로에서 아침을 먹기위해 옐프(Yelp)를 뒤져 찾은 식당이 ‘더 털쿼이즈 룸(The Turquise Room)’이었다. 그저 아침에 문을 여는 식당인줄로만 알고 찾아간 곳은 호텔안의 레스토랑이었다. 요즘 스타일의 세련된 호텔이 아닌 아리조나와 딱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의 오래된 호텔이었다.
레스토랑 안의 가구나 인테리어도 오랜 세월의 낡음 보다는 품위로 다가왔다. 그곳의 아침식사 또한 시골 마을 호텔 레스토랑 수준이 아니었다. 여긴 뭐지? 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둘러본 식당과 호텔은 흉내낸 세월이 아니었다. 서빙하는 웨이트레스들도 호텔과 닮아 있었는데 음식가격은 비싸지도 않았다.
알고보니 라 포사다 호텔은 전성기였던 1930년대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루즈벨트 대통령을 비롯해 유명인사들이나 존 웨인, 밥 호프 등 많은 헐리우드의 스타들이 다녀갔던 유서깊은 호텔이었다.
라 포사다 호텔은 미국 산타페 철도의 호텔과 레스토랑 사업으로 유명했던 기업가인 프레드 하비(Fred Harvey)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윈슬로는 지리적으로 북부 아리조나를 여행할 때 하루코스로 가장 적합한 장소였기에 이곳에 호텔이 세워지게 되었다. 또한 이곳은 Santa Fe Railway의 아리조나 본부이기도 했다. 지금도 호텔 뒷마당은 바로 앰트렉 역으로 연결되어 있다.
라 포사다호텔은 1930년부터 1957년까지 27년간 운영되었다. 이후 40년 동안 여러 번 건물은 거의 철거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소유주인 Allan Affeldt가 버려진 La Posada 호텔을 구입하게 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 서부역사의 한 장으로 연결되는 라 포사다호텔
미개척시대의 역사에는 하비 걸스(Harvey girls)라는 말이 있다. 서부가 아직 미개발지였을 당시 선구적인 여행관련 사업가인 프레드 하비에 의해 하비 걸스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Harvey는 Santa Fe Railway를 비롯한 철도회사들과 계약을 체결하여 철도 노선을 따라 식당 시스템을 운영했다. 그렇게 해서 뉴멕시코, 애리조나 및 캘리포니아의 인구 부족 지역을 가로지르는 산타페 철도 노선을 따라 수십 개의 우아한 레스토랑과 호텔을 세웠다. 1891년까지 15개의 Harvey House 레스토랑이 운영되었다. 그래서 미국 최초의 레스토랑 체인이 Harvey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필요한 인력을 위해 18세에서 30세 사이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서부로 여행을 가서 그의 레스토랑에서 일할 웨이츄레스 모집광고를 내게 되었다. 자격조건에는 미혼과 좋은 성품이 요구 되었다. 아마도 당시에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 웨이츄레스로 일하는 것이 하나의 모험있는 삶으로 여기는 시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1년 계약을 맺고 일을 하다 결혼 등의 이유로 중도에 해지하는 경우는 기본급의 일부를 몰수당하기도 했단다. 초기 웨이츄레스의 유니폼은 긴 검은 드레스에 풀먹인 흰색 앞치마, 검은색 불투명 스타킹에 검은색 신발을 신도록 했다. 이 고전적인 19세기 이미지는 ‘The Harvey Girls’라는 영화가 만들어지며 미국에서 대중화되었다.
지금은 Harvey Houses와 호텔의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몇 개가 남아 있다. 바로 그랜드 캐년의 사우스 림에 있는 엘 토바 호텔과 브라이트 엔젤 롯지이다. 그렇게 문화 관광사업의 선구자였던 하비에 의해 라 포사다호텔도 함께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호텔 디자인을 의뢰받은 Colter는 La Posada를 부유한 스페인 지주의 웅장한 농원이라 상상하며 디자인 했다고 한다. 그랜드 캐년의 롯지도 콜터가 디자인한 작품들이다.
호텔의 로비는 스페인 농장주의 집처럼 정감 있으며 어디든 편하게 앉아 하루종일 쉬어도 좋게 되어있다.
객실로 통하는 복도에 갖가지 소품들이 호텔을 찾는 이들에게 호텔이 지나온 세월을 소박하게 뽐내는 듯 하다.
요즘 흔한 호텔과는 다른 분위기의 호텔방 번호표시와 각 방에는 유명인사의 소개가 특색있다. 호텔룸들은 모두 똑같지 않으며 수십 년 전 소나무로 제작된 침대와 모자이크 타일이 달린 욕실이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 호텔에는 증축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오래된 부분인 중앙의 2개 층이 연결되어있는 계단이다.
20여년전 호텔을 인수한 Allan과 유명한 예술가인 그의 아내 Tina Mion이 세월에 덮혀가던 이곳을 박물관 같은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그래서 호텔 곳곳에는 이곳에 아트 스튜디오를 두고 있는 Tina와 조각가이자 총지배인 Dan의 작품들이 그대로 전시되고 있다.
by 50plus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