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지난 12월 달력의 끄트머리 몇 개의 숫자만을 남겨놓을 때였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고 그 여세는 마치 백신이 나왔다는 소식에 더 화가 난 듯 번지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개념 없는 가족이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대범한 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가 호수를 반씩 갈라 가져간 레이크 타호. 일 년 내내 레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특히 겨울철엔 호수를 둘러싼 스키장을 찾는 이들로 또 다른 모양의 계절을 맞이한다. 유명 스키장들이 많은 이곳은 1960년에는 레이크 타호 스쿼밸리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기도 했었다. 마치 커다란 스크린 위에 비친 호수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막힌 경치는 스키를 타야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이번 우리의 여행은 사실 아들을 위한 스키여행이다. 미국 대부분 대학생들이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은 지난 1년 동안 학교 안에서 더 제한된 생활을 해야 했었다. 더군다나 방학은 군사교육을 병행하기에 일반 대학보다 짧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1주일 더 얻은 모처럼의 방학을 그냥 보내기엔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전 가족여행을 감행한 것이다.
막상 레이크 타호를 가서 보니 호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크기에 놀랐다. 서울의 80퍼센트의 크기가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니 끝과 끝이 안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며칠간 매일 보던 호수는 매번 다른 그림을 호수에 담아낸다. 구름이 잔뜩 낀 날의 호수는 마치 소용돌이치는 복잡한 마음같이 된다. 아무 일렁임도 없는 호수인데 그 큰 마음도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밀려오는 파도처럼 보이는 착시가 일어난다.
하지만 다음날에 보이는 호수는 또 달랐다. 서둘러 돌아 내려가는 해가 남긴 어스름한 석양은 여운조차 남길새 없이 색이 바뀌어 갔다. 멈춰버린 순간처럼 일렁임 하나 없는 호수지만 뒤돌아 가는 해만큼은 바쁘디 바쁘다. 그래서 현란한 색을 남겨놓고 가버렸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호수 한켠 손톱만큼 아주 작은 만, 에메랄드 베이였다. 그래도 웬만한 호수 크기인 그 안에 더 작은 섬 하나 살짝 솟아있는 곳이다. 레이크 타호에서 제일 인기 있는 곳이다.
모두들 호수 속에 살짝 잠긴듯한 섬을 이리저리 핸드폰에 담기 바쁘다. 그런데 한쪽에선 열심히 두 아이와 엄마가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겨우 버겁게 형체를 갖춘 눈사람에게 모자와 빨간 머플러가 둘러졌다. 끝인가 했더니 엄마는 가방을 뒤져 비닐봉지를 꺼낸다. 재밌게 지켜보고 있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플로리다에서 눈사람을 만들려고 가져왔다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한다. 비닐봉지에는 눈사람의 코가 될 주황색 당근 하나와 까만 단추 2개가 들어있었다. 플로리다에서 눈 구경을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해 온 것이다. 그리곤 아이들의 이 순간은 차곡차곡 엄마의 핸드폰 속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훗날 핸드폰 속 사진과 함께 엄마는 ‘우리 레이크 타호 가서 눈사람 만들었지’ 하고 이야기할 것이다. 또 나도 몇 년 후 사관학교를 졸업한 아들과 이야기할 것이다. ‘그때 코로나 한창일 때 레이크 타호 가서 스키도 타고 호수가 멋졌지?’ 하며 말이다. 인종을 막론하고 자식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란 다 같은 것인가 보다.
아마 오늘도 호수는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을 그려내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구름이 요란하게 소용돌이치는 듯 마음을 흔들어 놓아도 호수는 잔잔하게 고요하다. 요란히 물결치지도 않고 파도는 더더욱 없다. 구름과 해가 하늘에 요란하게 그리는 그림이 호수에 비추겠지만 물을 일렁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팬데믹에 세상이 불안해도 모든 엄마들은 내 자식의 세상에 맞춰 있듯이 말이다.
by Veronica(전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