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야생화로 유명하다는 안자보레고(Anza Borrego) 주립공원을 가을이 한창인 10월, 여전히 물러날줄 모르는 더위가 버티고 있는 주말에 다녀왔다.
캘리포니아 남부 워너스프링스로 부터 안자 보레고로 들어가는 길을 차를 몰고 들어가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앞으로 내리막이라는 주의표지판이 보이고 나서부터 나오는 풍경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다. 돌바위가 눈같이 흩뿌려져 박혀있는 산들을 굽이굽이 내려가다보면 산아래 펼쳐지는 시야는 광활하다 못해 다른 미지의 세상같다. 흡사 지구상에 그 어느곳도 아닌 세상속으로 빨려들어가며 가라앉는 느낌이랄까.
산아래로 향하는 커브를 돌때는 낭떠러지 세상으로 내리꽂히는 느낌이 들다가 다시 내리막길에서는 아래 세상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다.
그렇게 번갈아 가며 커브를 돌다 짐짓 빨려들어가지 않을듯 목을 뻣뻣하게 힘주게 된다. 내려다 보는 순간 좀전까지의 내가 지나온 그곳이 캘리포니아가 맞는걸까하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마치 어느 별, 화성에라도 떨어진듯 하다.
안자보레고 주립공원이 (Anza Borrego) 자리하고 있는 보레고 스프링스(Borrego Springs)는 뿔달린 산양, 빅혼(Big Horn)의 스페인어 ‘보레고’에서 따온 말이란다. 짐작 하듯이 커다랗고 둥글게 뿔달린 양이 많다는 곳이지만 아쉽게도 주말 나들이 도시여행객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연과 어우러져 결코 튀지않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비지터센터는 주차장에서 입구를 뒤로하고 땅밑에 들어가 있다. 푯말은 비지터센터에 도착했으나 건물이 눈에 띄지 않는 구조다. 자연 중심의 이런 보호가 참 깊은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드넓은 이곳 아래세상에는 돌과 흙이 주인이다. 군데 군데 바짝 말라 비리비리한 선인장만 빼면 흡사 화성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둘러보면 물이 흘러생긴 골짜기도 있고 산야도 있다.
광활한 사막 들판에서의 해지는 노을은 언제나 멀리까지 온 여정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하루동안 빛을 다 내뿜은 해는 가고 노을빛 위로 달이 떠오르는 오늘은 마침 보름이다.
잠시만 오르면 세상을 다 내려다 볼수 있는 파노라믹 오버룩 트레일.
창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듯 스위치백으로 지그재그 오르다 보면 쑥쑥 내려앉는 땅아래가 멀어져만 간다. 짧은 왕복 1마일로 챙기기에는 너무 과분한 정상이며 경치를 받는다.
안자 보레고에서 대표적인 팜캐년 트레일
돌무더기 산에 흐릿하게 그어있는 팜캐년 트레일을 오르다 보면 비현실적인 팜트리 타운을 만난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바로 이런것이겠구나 싶다. 올해 1월 이유모를 불로 팜트리들이 불탔지만 다행히도 기둥만 검게 그을리고 잎들이 살아났다는 레인져의 말을 들었다. 올해는 참으로 캘리포니아가 산불로 고통받는 해인가 싶다.
양쪽 산을 끼고 골짜기로 모아지는 한철 내리는 빗물이 그나마 이 캐년의 팜트리를 살리고 있는듯 하다. 이제 우기가 거의 다되어간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최대한 저 땅밑에서 뿌리를 갈래갈래 뻗으며 물을 찾고 있을 화상입은 팜트리들이 잘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메탈 아티스트 Ricardo Breceda의 작품들
안자 보레고에는 수십개의 스카이 아트 (Sky Art Sculptures) 금속조각으로 또다른 볼거리를 준다. 수백만년전 이 사막에 주인 이었을것 같은 동물에서 시작된 작품들이다. 메탈 아티스트인 Ricardo Breceda의 작품 중 대표적인 350피트 길이의 용은 해질무렵 압권이었다.
구름과 지는해가 빚어낸 불을 뿜는 하늘은 완벽하게 용과 하나가 되었다. 지는 해가 연출하는, 너무 일찍 끝나 버리는 아쉽기만한 한편의 짧은 영상이다. 아마도 매일 같은 영상은 없을 듯 하다. 내일은 또다른 하늘이 만들어내는 영상이 펼쳐지겠지.
헬홀 캐년(Hellhole Canyon)
이른 아침 해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세상을 내 테두리 안에 넣겠다는듯이 빛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땅도 빛에 드러나고 산도 햇살에 물감이 번지듯 솟아오른다. 어제 저녁엔 둥그렇게 당당히 떠오르던 달이 이제 조그맣게 사라져갈 준비를 하는 아침이다.
아침이 땅도 깨우고 나무없는 산도 깨우는 아침 일찍 우린 헬홀 캐년(Hellhole Canyon)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막 뜨기 시작하는 태양은 모든 세상의 사물을 길게 잡아끌고 간다. 마른 들판의 선인장도 키작은 나도 키다리아저씨 마냥 아침 해에 길게 끌려가고 있다.
워낙 마른 땅이고 덥다보니 물을 꼭 지참하고 가야한다는 안내문이 많다. 심지어 ‘물을 충분히 안가져가서 죽은 자’라며 돌무덤에 나무묘비까지 만들어놓고 유머러스하게 경고하고 있다. 경고하는 것 하나에도 미국인들의 유머가 미소짓게 한다.
주말을 보낸 우리는 들어갈 때와 같은 길로 아래세상에서 다시 하늘로 튀어오를듯 고개를 돌아돌아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다음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필 봄의 안자 보레고를 약속하며 다시금 인간세상으로 나오는 기분이다.
by 50plus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