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의 ‘THE LAST BOOK STORE’는 이름에서 짐작되듯 처음엔 중고서점으로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온라인 중고서점으로 시작해서 시내에 조그맣게 매장을 열었다는데, 지금은 상당히 큰 규모의 대형서점이 되었고, 로스앤젤레스의 유명한 관광코스가 되어있기도 한다. 라스트 북스토어가 지금의 큰 자리로 옮겨 운영해온 것은 십 년이 좀 넘었다고 하는데 막상 가보면 십 년이 아니라 백 년쯤 된 오래된 서점으로 느껴지니 참 이상한 일이다.
입구를 지나 서점에 들어서면 온통 책으로 가득한 이 층으로 이루어진 서점을 만난다. 어둡고 묵직한 그 공간은 책들이 뿜어내는 향기로 가득했다.
라스트 북스토어, 서점이라기보다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올법한 아주 오래된 도서관을 떠올리게 하는 내부에는 고전문학, 현대문학, 역사서. 이런 식으로 분류가 되어있다. 책꽂이마다 책들은 알파벳 순서로 정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형서점에서처럼 컴퓨터로 비치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므로 책들 사이를 오래 걷고, 책들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뽑아보아야만 마음에 들어오는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는 서점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 책들 사이를 걸어 다니다 만난 책을 손에 들었다. 더러 계산하고 바로 나가기도 했지만, 책으로 가득한 어둑한 공간 가운데 비치된 낡은 소파에 앉아서 저마다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있기도 했다. 그들이 펴들고 있는 책은, 그 여행의 훌륭한 지도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책들의 공간이 이어진다.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분류는 되어있으나 따로 검색기능은 없는 듯하니 그저 이곳 역시 오래, 그리고 느긋하게 머물러야 한다. 나도 책들 사이를 오래 걸었다. 비록 남의 나라 언어로 되어있는 책을 읽어낼 재주는 없었지만,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다.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이다. 내 주위에도 책을 읽는다는 사람보다 책을 읽은 지 오래라는 사람이 더 많다.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사람이 적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물론 세상에는 책 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가득하다. 나의 재미가 책 읽기 하나가 아닌 것처럼,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책 읽기 말고도 재미있는 일은 다양할 것이다.
다만 글을 쓰는 나는, 책들의 시대가 앞으로도 오래 이어졌으면 한다. 특히 종이책 말이다.
전자책이 다양해졌고, 심지어 오디오북도 많아진 시대이다. 나 또한 여행 중엔 가끔 전자책을 읽는다. 하지만 역시 아날로그의 향기를 담은 종이책에 더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고, 그 종이로 책을 만든다. 읽히지 않은 책들은 다시 종이로 버려진다. 책들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책이 자원의 낭비로 남게 된다고 하는 부분에 관한 생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책은, 그래도 책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라스트 북스토어에는 오래되어 낡고 색이 바랜 책들도 있었다. 한쪽에는 새로 펴낸 베스트셀러라는 책들도 모여 있었다. 새로 펴낸 베스트셀러가, 언젠가는 그저 낡고 오래된 책으로 남을 날도 올 것이다. 그때까지도, 그 이후까지도 그렇게 책은, 책으로 오래 남아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한다. 베스트셀러가 아니더라도, 이제 기억하는 이조차 거의 없어진 낡은 책이 되더라도 말이다.
그런 어느 날에도 누군가는 서점에 들러, 책들 사이를 오래 걸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는 그들을 찾아낼 날을 꿈꾼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마지막까지 영원히 남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THE LAST BOOK STORE’를 나왔다. 밖은 햇살이 참 눈부셨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