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을 왔던 것은 아주 여러 해 전 순두부찌개를 먹기 위해서였다. 로스앤젤레스를 여행하며 코리아타운을 굳이 여행코스에 넣을 계획은 아니었는데, 남편은 한식을 먹어보고 싶어 했다. 외국을 여행하며 어쩌다 한식을 먹기도 했었지만, 그때마다 한식이라고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상한 음식에 가까운 것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북창동순두부라면 다를지도 몰라.”
한식 애호가인 남편은 그렇게 말했고, 결국 구글을 따라 우리는 순두부찌개를 앞에 놓고 앉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코리아타운은 오래전 시간이 멈춘 곳 같았다. 다소 촌스러운 상호들, 영어 간판 사이에 생뚱맞아 보이는 한글 서체도 이상했다. 세계적인 대도시라는 로스앤젤레스 한가운데에 코리아타운은 섬처럼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오래전 이민자들이 모여 살며 형성된 곳이 코리아타운이니 말이다. 내가 본 코리아타운은 극히 일부였으므로 그것을 일반화시킨다는 건 절대 안 될 일이다. 다만 그날의 느낌이 오래도록 코리아타운에 대한 나의 인상으로 남았었다.
그 후 로스앤젤레스에 몇 번 더 갔지만 코리아타운을 다시 찾은 건 그날 이후 처음이었다. 모임 약속이 있는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근처 작은 카페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렇다. 여기는 코리아타운이었다. 영어를 안 쓰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그곳 말이다.
어설픈 생존 영어 수준의 여행자가 발표회 속의 맛있어 보이는 빵들을 주문하려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This one! “같은 소리를 해야 했으나 여기선 달랐다.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크루아상 하나 주세요.”
“지금 크루아상은 반액 할인 중이에요. 데워 드릴까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런 대화가 오갔다. 세상에 편해도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늘 수월하게 입국심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꽤 많은 질문을 받았다. 직업이 뭐냐길래 작가라고 했더니, 뭘 쓰는 작가냐고 물었다. 누구랑 여행하냐길래 혼자라고 하니, 왜 혼자 왔느냐고 물었다. 왜라니.
‘나는 작가니 아무 데서나 글을 쓸 수 있지만, 내 가족들은 출퇴근해야 하니 5주씩 함께 여행할 수는 없어.’
이런 긴말을 영어로 설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이다. 나는 그저 ‘휴가’라서 혼자 왔다고만 했다.
가진 돈이 얼마냐 물었을 땐 입국심사관 앞에서 가진 돈을 세어 보여주었다는 지인의 무용담 같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행히 보여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긴장과 함께 슬슬 짜증이 날 무렵에야 입국심사관이 도장을 찍어주었다. 간단한 질문에 간단하게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것까지는 어찌 할 수가 있었으나 이처럼 “왜?”라고 질문이 재차 이어지면 대답하기 쉽지 않았다. 낯선 언어의 막막함이었다.
코리아타운에선 이런 낯선 언어의 막막함이 없었다.
“Restroom number, please!”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의사소통은 되었던 이런 말 필요 없이 당당하게 물었다.
“화장실 비번이 뭔가요? ”
“아. 번호가 따로 있지 않고요, 여기 열쇠 가져가시면 돼요. ”라며 내어주는 열쇠를 받아들면 되었다.
먼 나라 한국인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말을 한다. 외국으로 잠깐 여행을 왔다고 해서 엄청난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가는 한국 차를 보면 그때마다 반가웠다. 물론 그보다 더 반가운 것은 이처럼 한국어가 들리는 순간이다. 마음이 이처럼 편할 수가 없다. 여기는 로스앤젤레스 속의 코리아타운이니까 말이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