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어디나 일일생활권이 된지는 오래다. 하루가 아니더라도 맘먹으면 반나절 생활권도 가능하다. 그만큼 길은 많아졌고, 넓어졌고, 그래서 빨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를 찾는 일은 맘먹고야 움직이게 된다.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왔던 이후,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왔었다. 그리고 몇 해 전 또 한 번 더 갔던 경주를 이번에는 언니와 함께 자매 여행으로 들렀다. 언니야말로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코로나가 아니던 시절엔 거의 매해 한국에 왔지만 늘 바빴고, 만날 사람은 많았으며, 한 달 남짓의 일정으로 고국에 오는 여행자에게 경주는 멀었을 것이다.
나는 황리단길의 번잡함을 뺀다면 경주의 오래된 것들이 뿜어내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뭐니 뭐니 해도 경주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불국사였다. 여러 해 전 경주에 가서 불국사를 찾았을 때 그 절 마당은 마치 루블의 모나리자 그림 앞 인파처럼 사람이 넘쳐났다. 사람들을 뚫고 다보탑, 석가탑을 보았지만 몇 발자국 떨어져 탑을 바라볼 여유는 없었으므로 늘 아쉬웠다. 이번에 찾은 평일의 불국사엔 사람이 별로 없었고, 날이 흐렸으나 그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우리 자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 불국사에 머물렀다. 다보탑도, 석가탑도 사방에서 꼼꼼히 바라볼 수 있었다.
언니는 기와 시주를 하고 싶어 했다. 소원을 쓰고 기와 시주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그 어떤 종교이든 삶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의 평화를 기원했다. 우리의 기원이 담긴 기와가 어느 날엔 불국사 절의 지붕에 앉혀질 날을 잠깐 상상했다.
경주시내에 능은 흔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자리 잡은 능은, 결국 무덤인 것이나 이상하게 경주의 능은 무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편하다. 너무 자연스럽게 이곳저곳 도시 속에 섞여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능을 바라보며 걸어 첨성대에 도착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첨성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 살짝 추웠다.
그리고 조금씩 어두워지는 길을 걸어 동궁과 월지로 향했다. 언니가 보고 싶어 했던 것은 동궁과 월지의 야경이었다.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공사 중이었지만 야경은 보기 좋았다. 동궁과 월지의 조명은 어둠 속에서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을 비추는 것이어서 전각은 아름답게 자태가 드러났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천천히 야경을 보고 돌아오는 길 뜻하지 않게 월정교 야경을 본 것은 숙소주인장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는 경주에서라면 월정교 야경을 꼭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경주에서 월정교 야경을 처음 보았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빨려들 듯 몽환적인 기분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 밤의 야경을 카메라에, 눈에, 마음에 담았다.
“아침에 다시 월정교를 본다면 시시할까?”
우리의 궁금증은 다음날 아침 다시 월정교를 보며 해소했다. 시시하지 않았다. 낮의 월정교는 또 그 나름대로 웅장한 맛이 있었으니 말이다.
경주에서 돌아온 지 여러 날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경주의 오래된 것들이 내뿜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여전히 번잡한 황리단길은 그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월정교의 그 밤 풍경을 생각한다. 제 몸을 형형 색색으로 비추는 조명에 둘러싸인 월정교를 말이다.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던 그 밤과 월정교를 넋 놓고 바라보다 우리 자매도 생각한다. 그 밤은 오래도록 멀리 떨어져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