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첫 연휴엔 부국원에 갔다. 수원 토박이라고 뽐내면서, 정작 나는 부국원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 부국원이 있는 교동 근방을, 이십 대 시절엔 제법 많이 지나다녔는데도 말이다. 그 길은 남문, 그러니까 예전 수원의 구도심 한가운데인 그 남문에서 수원역 방향의 사잇길쯤 된다.
남문이 수원의 명동이던 시절, 우리들은 ‘수원역’이라 부르는 대신 그저 ‘역전’이라고 했다. 언젠가부터 역전은 수원역이 되고, 요즘 아이들은 ‘역전’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
어리던 스무 살 우리들은 그 남문에서 주로 만났고, 가끔 역전에서 놀았다. 대학 다닐 땐 늘 역전을 통해 학교로 갔으나, 결국 만나고 노는 곳은 거의 남문이었다. 역전에서 남문으로 수다를 떨며 친구들과 걸어오던 대로 옆의 사잇길 한켠에 부국원이 있었다. 방학이면 열심히 공부하는 척 토플책을 들고 중앙도서관으로 향하는 언덕을 기어오르던 갈림길을 지나쳐서 그 부국원이 있었다. 끝내 내가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던 부국원이.
부국원(富國園)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일제강점기 종자·종묘 등을 판매했던 일본인 회사로, 농업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방 이후 수원법원과 검찰청, 수원교육청과 같은 관공서와 병원, 그리고 인쇄소로 사용되며 백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건축물이다. 그리고는 2017년 10월 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되어 복원 과정을 거친 후 2018년 11월 29일 근대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것의 신기함을 생각한다. 늘 있던 것인데, 어디 가지도 않고 늘 그 자리에서 나이를 먹었는데 알고 나면 그제야 보인다. 살다 보면 이런 것이 부국원만의 이야기일 리는 없다.
부국원에선 마침 우시장 자료전을 하고 있었다. 수원은 예로부터 전국 3대 우시장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우시장이 유명했고, 그 덕에 수원왕갈비가 향토 음식이 된 것이라 한다. 수원왕갈비를 먹고 자란 나 같은 토박이들은 포천, 안동 그 어디의 갈비 골목을 가서 맛을 보아도 수원왕갈비와 비교하며 은근한 자부심을 내비치곤 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수원왕갈비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바로 우시장이었다.
수원에 있었다던 우시장이 개발에 밀려 하나둘 사라지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곳이 곡반정동의 우시장이라고 한다. 곡반정동의 우시장은 96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이제 그 자리는 아파트 숲이 되어 옛 모습을 상상할 수는 없다. 하지만 토박이들은 가끔 말끝에 ‘곡반정동 우시장’을 이야기하기도 하니 참으로 오랜 세월 우리 곁에 있었다.
자료사진이며 영상이 다양했다. 사진 속 거간꾼이 소를 팔고 사는 사람 사이에서 흥정하는 영상도 있었고, 소를 끌고 온 많은 사람의 모습이 자료사진 속에 있었다. 어떤 사진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흑백사진이기도 했고, 우시장의 사진 속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과는 많이 다른 복색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저 짐작으로 아주 오래전 사진이로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진 아래 설명에 연도가 1981년이었다.
1981년이라니. 나는 사진만 언뜻 보고 대충 70년대 사진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즈음 십 대 시절을 통과하던 나의 기억과 사진 속 풍경은 너무 괴리가 컸다. 어린 시절 다녔던 학교에 가면 내가 마치 이상한 나라의 걸리버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은 작게만 느껴진다. 옛 동네를 찾아가면 그 넓던 골목이 이렇게나 좁았었나 싶어 놀라기도 한다. 결국 변한 것은 나였던 걸까.
사실 나는 그 곡반정동 우시장에 갔던 기억이 있다. 96년에 사라졌다고 하니 내가 부모님을 따라 우시장 구경하러 갔던 것이 아마도 우시장의 역사의 끄트머리쯤 되겠다. 소들이 많았고, 사람들이 번잡하게 시끄러웠고, 지저분하고 냄새도 났지만, 신기해서 부모님을 따라 두리번대며 구경했다.
그날 그 우시장에 구경을 갔던 것은 그곳이 없어진다고 해서였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엄마의 말끝에 ‘우시장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해서….’ 라고 했으니 아마도 부모님은 아쉬운 마음에, 나는 신기한 마음에 그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한시절을 통과해서 살아낸다는 것은 사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을 걷는 것이다. 이어진 발자국 저 뒤편에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한 무수히 많은 발자국도 남아있을 것이다. 우시장처럼 오래 있던 것이 어느날 사라지고, 그 자리엔 길이 생기고, 또다른 건물이 들어서서 옛 이름조차 잊히는 세월이 오더라도 그 발자국이 있음을 기억하는 한 마음속엔 여전히 소가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울던 어느날처럼, 그리운 이들의 목소리가 오래오래 남는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