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둘이서만 여행을 했던 것은, 우리 기억에 처음이었다. 우정여행, 태교여행… 여행의 이름도 많은데 우리 역시 나이를 먹어서 둘만의 ‘자매 여행’을 떠났다. 부산과 경주였다. 멀고 먼 나라에서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산 언니에게, 태어난 나라에서의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나는 내 나라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고, 심지어 내 고향에서 붙박이로 살고 있는 토박이이니 말이다.
해외에 사는 사람들이 고국의 소식을 접하는 것은 역시 영상매체가 우선이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대부분은 드라마, 유튜브로 접하고는 궁금해하는 언니를 볼 때마다 신기해서 웃었다. 언니가 가고파 했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에 찾아갔다.
이른 오전부터 햇살이 넘치게 좋았다. 산동네로 오르는 길은 구불구불 좁고 가팔랐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정경은 그림책 속 풍경처럼 알록달록 아기자기했다. 좁은 골목에는 예쁘고 독특한 상점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 무리의 학생들을 만났다. 단체로 봄소풍을 나왔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생경스러울 수가 없다. 코로나 삼 년 동안 아이들이 단체로 무리 지어 소풍을 나오는 모습이 낯설어지다니 서글픈 일이다. 아이들은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좁은 골목 여기저기에 아이들 발소리와 웃음소리들이 들어찼다. 언니와 나 역시 웃으며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렸다.
언덕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동안 바람이 제법 불어왔다. 머리칼을 뒤로 젖히는 바람 속에서 한참 마을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누군가의 삶이 관광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마음이 조금 이상해졌다. 누군가의 삶을 구경거리로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 다른 이의 삶을 엿보는 것 같다는 불편함 같은 것 말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발걸음이, 웃음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에게도 역시 그들의 삶은 이어질 테고 누구든 삶의 모습이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 내 삶의 모습 역시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것처럼 말이다.
그간 부산을 떠올릴 때면 일생을 부산에서 사신 이모를 생각했고, 부모님이 계실 적 모두 함께 했던 해운대와 자갈치시장을 추억했다. 그리고 남편과 순례 도장을 받으러 다니던 오래된 주택가의 한적함도 종종 생각했다.
이제 부산을 생각한다면 그에 얹어서 언니와의 여행을 떠올릴 것 같다. 언덕에 가득하던 수많은 삶의 모습들, 해운대 밤바다 앞의 포장마차에서 소라를 까먹던 밤의 흰 파도 , 그리고 우리가 나누었던 그 많은 웃음과 말들이 그렇게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