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딱히 한국을 나갈 때마다 굳이 명동을 갈 기회가 없었다. 20년 만에 다시 찾은 명동은 흡사 외국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코로나의 그림자가 완전히 넘어간 것은 아닌데도 외국인들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많은 외국인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역시나 20년 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곳에 명동 성당이 있다.
명동에 새로운 세대가 물밀듯이 나오고 먼 나라의 사람들이 몰려와도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있다. 바로 명동 성당이다. 인파를 헤치고 계단을 올라 이제는 예전보다 낮아진 듯 보이는 언덕 위의 명동성당은 흔들림 없이 있었다. 시끄러운 세상사에도 그곳은 조용하게 점잖은듯 보인다.
또 다른 명동의 터줏대감, 명동칼국수 아닌 명동교자
어릴 적 엄마와 가끔씩 가는 서울나들이는 즐거웠다. 롯데백화점을 국경하고 칼국수집을 들르게 되는 것은 정해진 코스였다. 옛날 먹던 그 칼국수집은 이제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려 왠지 훈장 달린 근사한 제복을 입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오픈하기 30분 전부터 줄을 섰다가 알현해야 하는 지위가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 맛은 변치 않고 중년이 되어 20년 만에 찾은 이에게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한 분야에서 전문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명동칼국수는 이제 명동교자란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그러면 어떤가 이름과 상관없이 나에게는 그 칼국수다.
명동과 공존해 온 다른 나라, 화교
명동의 또 다른 한쪽길에는 다른 나라, 화교마을이 있다. 어릴 때 신기함에 이방인의 거리를 누빈 기억도 난다. 그때보다는 작아진 듯 하지만 그곳엔 그렇게 화교들의 일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곳도 많은 것들이 변하고 사라진 듯하다. 그중 하나 옛 대만 대사관 건물엔 이제 카페 ‘더 스팟 패뷸러스’가 있다. 한국의 독특한 카페문화는 대사관 건물도 삼켜 다르게 토해놓았다. 하지만 떠난 이의 흔적이 너무 없어 아쉬웠다.
명동에서 함께 보내는 하루의 끝자락
명동지하철역 건너편 언덕 위를 오르며 남산을 올려다본다. 세월이 흘러버린 그사이 캘리포니아에 살았던 이방인은 이 작은 땅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모여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예전보다 세련되진 상차림의 요즘 버전 백반을 먹으며 명동과 내가 또 다른 추억을 쌓은 하루였다.
by 50plus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