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엔 볼거리며 맛집이 참 많다. 동해바다는 맑은 날 그 잉크빛만으로도 어디나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강릉의 경포호처럼 석호를 두 개나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청초호와 영랑호가 그것이다.
청초호를 가본 것은 몇 해 전이었다. 우습지만 포켓몬 고라는 게임이 잠시 속초에서만 가능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 한국의 태초마을로 속초가 알려져 인기였다. 나 역시도 그때 청초호에서 포켓몬들을 잡는 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또 하나의 석호인 영랑호는 가본 적이 없었다. 속초에 여러 번 왔으나 이번이 초행이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영랑호는 신라의 화랑인 영랑이 이 호수를 발견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강원도 속초시의 북쪽인 영랑동, 장사동, 금호동, 동명동 일대에 걸친 석호로 둘레는 7.8킬로에 이른다고 한다. 하늘이 높고 푸른 겨울 오전의 영랑호는 잉크빛으로 빛나 눈이 시릴지경이었다. 호수 주변에 산책로가 잘 가꿔져 있고, 리조트가 들어서 이국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여행자들에게 요즘 영랑호는 영랑 호수 윗길로 먼저 다가온다. 영랑호를 가로지르는 데크다리가 개설되어 볼거리를 선사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 호수를 가로지른다는 다리가 궁금했다. 그 다리에서는 해넘이도 멋있다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경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울산바위를 비롯해 설악의 여러 봉우리들이 한눈에 조망이 되는 곳이라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둘레길을 걸었다. 길은 잘 가꾸어져 있었고, 그리 차가운 겨울 날씨가 아니어서인지 사람들은 많이 걸었다. 아쉬운 점은 푸른 호수를 따라 영랑 호수 윗길 다리를 향해 걷다 보니 흉물스러운 폐가들이 더러 보인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엔 너무 낡았고, 몇 채는 잔해만 남은 곳도 있었다. 알고 보니 예전에는 별장으로 쓰이던 건물들이지만 대형산불로 소실되어 지금은 그저 버려진 집들이라고 했다. 밤이라면 꽤 으스스했을듯한 풍경이다. 잘 가꾸어진 집들이 었다면 그곳에서 바라보는 호수전망이 너무 멋있었겠다. 하긴, 그러니 별장을 지었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흉물스러운 집들은 다시 잘 정비되어 호숫가의 또 다른 볼거리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영랑 호수 윗길 다리를 건너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다. 다리 중앙에는 원형광장도 있어 건너편 설악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역시 울산바위도 정면에서 조망이 가능했다.
속초를 찾아올 때 고속도로 왼편으로 울산바위가 보인다. 그처럼 가깝게 보이지는 않으나 넓고 푸른 호수 가운데에서 설악산을 바라보는 느낌은 너무 좋았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과 달리 멀리 조망하면 설악의 봉우리들이 이어져 한눈에 들어온다. 그 설악산 줄기에서 울산바위는 이질적이면서도 기이해서 가장 눈에 띄었다. 호수 윗길 데크를 기점으로 설악산 쪽은 수면이 살짝 얼어있었고 바다 쪽은 그렇지 않았다. 오리 떼들이 모여서 자맥질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지나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여행에선 항상 웅장하고 멋진 풍경만이 눈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작은 풍경에도 웃음이 난다. 마음이 편안하게 이완되어 있기에 작은 것도 눈에 들어오고, 소소한 감상도 그렇게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 싶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겨울 하늘 아래 영랑호의 물빛도 참으로 청아했다. 여러 번 속초를 왔으나 영랑호가 처음이었다. 또다시 속초를 오게 된다면, 더 많이, 더 오래, 더 천천히 영랑호를 즐기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바라보아도 좋을 것이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