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근처로 사도세자의 능을 이장하며 원찰로 삼았다고 하는 이 절은, 낙성식 전날 밤 정조의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이름이 ‘용주사’가 되었다고 한다.
용주사는 사실 큰 절도 아니고, 대부분의 절이 그렇듯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나 같은 수원 토박이에겐 학생 시절 단골 소풍장소였으므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이미지인 것이다. 초중고를 다닐 동안 융건능과 함께 용주사는 여러 차례 소풍의 단골 장소였다. 가까웠기 때문인지 단체버스를 대절하는 것이 아니라 용주사 앞으로 모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슷한 시간에, 다들 용주사에 모여야 했으므로 시내버스는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처럼 아이들로 가득 찼다. 정류장에 설 때마다 기사님은 살짝 급정거를 했고, 버스 안에 가득 찬 아이들은 그때마다 소리를 질러대며 한쪽으로 몰리곤 했다. 그렇게 초중고를 지나오는 동안 여러 번 왔지만 , 단체로 오는 소풍이 뭐 그리 대단하게 재미있을 것도 아니었으니 딱 그만큼의 감상만이 남았다.
오히려 근래 들어 근처의 융건능이며 용주사는 정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룬 일련의 드라마나 영화로 인해서 유명세를 탄듯하다. 주차장이며 주변 환경이 몰라보게 단장되어있었다. 평일의 겨울 한낮이어서 한산했지만 주말엔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근처에서 친구와 점심을 먹고, 우리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손에 쥐고 용주사 경내를 걸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가 본 용주사였다. 멀지 않은 곳에 사니 종종 지나치지만 굳이 들어와 보게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때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연락하면 언제든 볼 수 있으나 한 해를 보낸다는 핑계로 그렇게 또 한 번 보는 친구였다. 나는 아빠의 고향이기도 한 수원의 토박이이다. 친구는 서산 사람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는 수원사람으로 살았다. 그러니 친구에게도 수원은, 이미 나고 자란 서산보다 더 많은 인생의 시간을 보낸 곳이 된 것이다.
우리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용주사 경내를 걸었다. 절에서는 보기 힘든 홍살문을 올려다보았으며, 간간히 드나드는 신도들이 대웅전에서 진지하게 기도하는 것을 멀찍이 건너다보기도 했다. 절마당의 물이 담긴 돌 항아리에도 눈길을 주고, 절이라면 응당 빠지지 않는 약수가 솟는 샘도 지나쳐 걸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여러 번 왔던 곳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익숙하지는 않았다. 아주 최근은 아니더라도 근래 용주사에 몇 번 오기도 했었건만 참 많은 부분이 새로웠다. 같은 장소를, 누구와, 언제 오느냐에 따라 그 같은 장소는 늘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미 대부분 안다고 생각한 풍경들은 처음 보는 것인 듯 생소함으로 다가왔다. 이런 맘은 친구도 비슷했는지 우리는 서로 같은 말을 나누었다. ” 용주사에 이런 게 있었나? 왜 처음 보는 것 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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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며칠 안 남은 이야기를 하며, 지난 350 여일쯤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서로가 다닌 곳들, 읽었던 책의 잊히지 않는 구절도 꺼내놓았다. 겨울바람은 찼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겨울 공기는 사이다처럼 청량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친구와 지금의 우리를 이야기하는 송년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 용주사에는 절밖 도로를 지나는 차들 소리마저 멀찍이 물러나고, 고요가 가득했다.
절마당에 들어서면 가득 차 있음과 동시에 텅 빈 느낌이 함께 느껴진다. 불교신자는 아니어도 내가 절을 좋아하고, 절에서 느끼는 매력은 이런 것이다. 크지 않은 절을 한 바퀴 돌고, 우리는 한편 나무 아래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나왔다. 새해에도 계획하지 않은 어느 계절에 문득 만나서 오늘을 떠올릴수있으면 좋겠다. 그때가 언제이든, 삶은 평화롭게 흘렀으면 한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