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효원공원이 있다. 수원 토박이인 데다가 지금 살고 있는 매탄동에서만 삼십 년을 살아온 나에게 효원공원은 참으로 익숙한 곳이다. 아이가 어린 시절엔 손잡고 자주 찾았지만, 이제 집 근처엔 굳이 효원공원이 아니더라도 잘 정비된 산책로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효원공원은 언제부터인가 그저 지나치는 곳이 되었다.
공원은 푸르름이다. 그 푸르름을 즐기러 가는 곳이니 말이다. 새벽에 비가 와서 공기가 싱그런 아침, 문득 효원공원이 떠올라 오랫만에 나가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에도 사람들은 공원에서 더러 걸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이들도 있었다. 빗물 웅덩이를 피해 귀엽게 생긴 녀석들이 네발로 뛰어다녔다. 예전 달아이 어린시절에, 기르던 요크셔테리어를 데리고 함께 종종 나왔던 날을 떠올렸다. 공원에만 오면 아이도 뛰고, 강아지도 목줄이 당겨질 때까지 뛰었다. 한때는 그렇게 둘을 잡으러 뛰어다녀야 했다. 이제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우리와 함께 열아홉 해를 살았던 강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오래된 세월이다.
넓이가 14만 제곱미터를 훌쩍 넘는다는 커다란 공원은 1994년에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넓고 탁 트인 느낌의 공원이었다. 같은 해에 태어난 딸아이가 어렸던 시절엔 주로 유모차를 끌고 소풍을 나왔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김밥을 사다 먹으며 놀기 좋은 곳이었다. 아이가 조금씩 커나가며 공원의 모습도 점차 바뀌어 갔다. 나무와 조형물이 좀 더 많아졌다.
때로는 플리마켓이 열렸던 적도 있는데, 어느 날 딸아이는 거기서 자기가 쓰지 않는 문구며 장난감을 팔았다. 돗자리를 펴고 가격을 써 붙이고 손님을 상대했다. 처음엔 판매실적이 썩 좋지 않았지만 결국 완판되었다. 아이가 안쓰러웠던 외할아버지가 왕창 사주신 덕이었다. 그날 우리 가족은 많이 웃었고, 아이는 외할아버지에게 판 물건이 반도 넘었지만 어쨌거나 즐거워했다. 효원공원에서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늘 그날의 플리마켓이었다.
그 후 토피어리 장식원이 생기고, 요즘엔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문자조형물 포토존도 생겼다. 어렸던 아이가, 몇 번을 알려줘도 늘 ‘아줌마 동상’이라 부르던 혜경궁 홍씨를 형상화했다는 ‘어머니상’도 있었다. 공원 중앙에 있던 그 어머니상은 월화원 옆쪽으로 옮겨 단장되었다. 오랫만에 와보니 공원은 어쩐지 예전보다 좀더 풍성해진 느낌으로 구석구석 단장되어 있었다.
여름 끝자락이지만 비 온 후라 싱그런 공기 속을 걷다가 월화원 앞에 도착했다. 월화원은 효원공원 내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광둥지역 전통정원의 양식을 그대로 살린 건물이다. 경기도와 광둥성의 우호협약의 사업 중 하나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광저우에도 경기도에서 지은 전통정원이 있다고 한다. 팬데믹이 지나가고 나면 광저우에 가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길고 지리한 마스크의 나날이니 말이다.
공원을 걷다가 월화원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밖에서 보기보다 월화원 내부는 크고 색다르다. 중국의 전통 정원과 정자들로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어버린다.잠시 중국 옛시절 어디쯤으로 타임워프해서 와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물이 흘러내리는 정자에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연못가 정자에서는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평일 이른 오전의 한때, 그 모두가 참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효원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예전보다 나무가 울창해져서 그늘이 넓고, 깊어졌다. 입구에서 잠시 건너편 아파트와 버스정류장을 보았다. 예전 신혼 때 처음 살림을 시작한 곳이었다. 그때의 아파트는 이제 재건축이 되어 흔적도 알 수 없는 새동네가 된 지 오래다.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첫 출근하는 남편을 따라 그 버스정류장에 나와 섰었다. 버스가 도착하고 결혼 후 첫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했던 그날, 새색시였던 나는 손을 흔들고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었다. 그때의 새신랑이었던 남편은 이제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진 나이가 되었다. 그날 정류장까지 배웅하던 새색시였던 나는, 이제 아침에 깨어 보면 남편은 이미 알아서 출근하고 없는 것이 당연한 아내가 되었다. 혼자 옛 생각을 하며 웃었다.
입구 옆에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공원 내의 편의시설은 당분간 사용을 중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쩐지 벤치며 테이블마다 폴리스라인 같은 테이프들이 둘러져있었다. 팬데믹 시대엔 흔한 풍경이다.
공원의 벤치들이 다시 돌아올 날을 꿈꿔본다. 그날이 올까 싶을 정도로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고개돌려보면, 마스크없이 푸른 공기속에 앉아있는 그날도 와있겠지. 그날이 오면, 도시락을 싸들고 돗자리를 챙겨 공원 벤치로 소풍을 떠나봐야 겠다. 예전처럼 말이다.
이 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