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회산백련지를 찾았던 것은 십년도 더된 일이다. 연꽃을 보러간 길이었으므로 당연히 이맘때쯤 여름의 열기가 가득하던 이른 아침이었다. 주차장이라고 정비된 것도 아니어서 비포장 너른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나니 동네 할머니들이 길에서 양파를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안= 양파. 나에게 각인된 순간이었다.
예전과 변함없이 광활한 저수지에 물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밭이었다. 다만 주변은 잘 정비되고 가꾸어졌다. 주차장도 넓게 갖추어지고, 편의시설도 모자람이 없다. 주차장은 무료였고, 입장료도 없었지만 입구에서부터 안심콜로 인증을 하고야 들어갈수 있다. 코로나 시대엔 어쩔수 없는 일들이다.
백련지로 내려오는길, 날씨가 계속 흐렸다. 군산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는 비가 쏟아졌다. 쏟아진다기보다는 내리꽂힌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만큼 굉장한 빗줄기였다. 다행히 비가 그친것은 함평을 지나면서부터였다.
회산백련지의 하늘도 잔뜩 흐려있었다. 오면서 만났던 그 거대한 빗줄기를 담은 구름이 가까이 오는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흐린날, 이른 아침. 그래도 사람들은 더러 있었다. 거대한 푸른 연밭을 보며 걸었다. 연잎은 엄청 거대해서 개구리 왕눈이 몇마리쯤 올라가 앉아도 끄덕없을 크기도 많다. 그리고 연꽃은 거짓말처럼 깨끗했다. 이름처럼 대부분이 흰 연꽃이었지만, 더러 분홍빛의 연꽃들도 있었다. 연잎이 큰것처럼 연꽃도 역시 크고, 하나씩 올린 대끝에 봉오리를 피워올린 꽃들은 우아하기 이를데 없다.
백련지 안쪽까지 데크가 있어 들어가 볼수 있다. 깊숙히 들어갔을때에,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푸른 연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투두둑,투두둑. 땅에 떨어지는것도, 물에 떨어지는 것도 아닌 그 소리를 한참 듣는 동안 몸이 젖어버려, 백련카페로 뛰어 들어가 연잎라떼를 한잔 들고 저수지를 다시 보았다. 빗줄기가 눈에 보일 만큼 굵었고, 굵은 빗줄기아래에서도 연밭은 더없이 평화로워보였다. 푸른 연과 깨끗한 연을 좀더 바라보다가 빗줄기가 잦아들었을때에야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걸었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들어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어쩍까지 죄다 연밭이야. 예전에 왔을적에는 이런 다리는 없드만 뭐가 많이 생겼네. 사진 찍어줘? ”
잠시 걸음을 천천히 했다. 지나가는 내게, 두분이 함께 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면 예쁘게 한장 찍어드리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세우고 한장을 찍었다. 쑥스럽게 포즈를 잡던 할머니, 신중하게 사진을 찍어주던 할아버지도 막상 찰칵, 소리가 나고나자 쿨하게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갈길을 가셨다. 예상과는 달리, 우리 같이 한장 찍읍시다! 라거나, 잘 나왔는지 어디 한번 봐요! 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으셨다. 두분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 웃었다. 그분들의 인생에, 그저 무심한듯 함께 하게되는 지금과 같은 시간들이 아주 오래 계속되었으면 했다.
나오며 차창 옆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푸른 연밭을 보았다. 사이드밀러를 보니 뒤로 멀어지는 하늘이 온통 새카매지고 있었다. 아마도 잠시 뒤면 그 먹구름들은, 커다른 푸른 연잎과 고운 꽃위에도 빗줄기를 꽂아넣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세찬 빗줄기속에서도 연잎은 청청하게 푸르고, 연꽃은 여전히 꽃대를 곧게 세운 자태를 보여줄 것이다.
진흙탕에서도 깨끗하고 고운 연꽃을 피워내듯 살 자신은 없지만, 또 다시 십년후쯤에도 저수지를 메운 푸른연밭사이의 고아한 연꽃을 보며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날이든, 먹구름속 가득한 빗줄기가 들이치는 날이든 그 어떤 날이라도 말이다.
그때엔 나도 옆지기와 함께 와서 이야기할수 있겠지. “십년전에 왔을때도 저쪽까지 다 연밭이었어. ” 그리고 무심하게 툭, 한마디 건네봐야겠다. “사진 한장 찍어줘? ”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