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이면 낚시꾼들은 저수지에 모였다. 플라이낚시는 주로 계곡에서 하는데 얼음이 덮이는 한겨울엔 ‘관리형 저수지’라 부르는 낚시터에 풀어놓은 송어를 낚는 것이다. 내가 처음 플라이낚시를 시작한 곳도 그처럼 송어를 풀어놓은 낚시터에서였다.
인터넷에서 스치듯 사진 한 장을 보고는 검색으로 알아낸 것이 ‘플라이낚시’였다. 플라이낚시라고 하면 그 유명한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사진 속의 낚시꾼은 우리나라 사람이었는데 계곡에서 낚시대를 휘두르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누구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알지 못한다. 다만, 영화의 유명한 포스터 덕에 기시감이 있었던 것 아닐까.
그 사진에 꽂혀 플라이낚시가게를 검색했을 때 제일 먼저 알게 된 곳의 사장님은 경력이 오랜 낚시꾼이기도 했다. 플라이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알았다. 낚싯대와 용품들을 구입하고, 다음은 기본적인 것들을 배워야 했다. ‘캐스팅’이라고 하는 낚싯줄을 던지는 동작이며, 상황에 맞게 미끼와 라인을 조절하는 방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주말마다 계획에 없던 일이 자꾸 생기던 나는 사장님과의 동행 출조를 하며 배울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결국 그분이 알려주는 대로 평일 오전의 저수지 낚시터를 찾아갔다.
‘가면 그가 다 알려줄 것이다’라고 해서 믿었던 낚시터 사장은 없었다.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는 그만 집에서 뻗어있다고 했다. 낚시가게 앞마당에서 몇 번 낚싯대를 흔들어본 것이 전부였던 나는 당황했다. 가뜩이나 평일 겨울의 저수지 낚시터에 웬 여자 하나가 낚싯대를 들고 혼자 나타난 것부터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나의 사정을 들은 몇몇의 낚시꾼들이 하나씩 도움을 주었다.
“저쪽으로 던져보세요” 했지만 미끼는 이쪽으로 날아갔다.
“미끼는 이걸 달아보세요.” 받아 든 미끼를 새로 다는 데만도 한 시간이었으므로 곧 그들은 말을 바꿨다. ” 아니 낚싯대 줘보세요, 제가 달아드릴게요.”
“캐스팅할 때는요, 이렇게…” 열심히 시범을 보여주었지만 몸으로 하는 건 대부분 못하는 사람답게 날아가다 꼬이고, 멀리는 커녕 발 앞 3미터를 넘기기도 힘들었다. 총체적 난국의 낚시였다.
그해 겨울, 그렇게 저수지 낚시터에서 종종 도움을 받았다. 평일 오전에 시간이 나서 낚시터에 오는 사람들은 얼추 비슷했다. 그랬으므로 그들은 내가 나타나면 먼저 다가와 아는척해주었고, 도움을 주었다.
“오늘은 수심을 좀 더 길게 주어 보세요.”라고 하면 그 말대로 좀 더 깊이 미끼를 가라앉히기도 했다.
가끔은 저수지 테두리 그물에 붙어 다니는 녀석들을 쉽게 낚을 수 있는 ‘구멍 치기’의 꼼수를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못 잡을 때 한 번씩만 해보시는 거예요. 습관 되면 절대 캐스팅이 늘지 않아요.” 했다.
플라이낚시에선 쓰지 않지만 잡는 날보다 못 잡는 날이 많은 내가 안쓰러운지 스윽, 빨간 지렁이처럼 생긴 미끼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플라이낚시에선 좀 편법이니까 조용~히 쓰셔야 해요.” 하며 범죄 공모하는 사람처럼 웃고 지나갔다.
어쩌다 송어 하나를 낚으면 흥분해서 뜰채에 담지를 못했다. 허둥대고 혼자 난리를 떨고 있으면 또 누군가 다가와 대신 뜰채에 담아 건넸다. “사진 안 찍으세요?”
그렇게 해서 나는 거의 꽝쳤고, 가끔 잡으며 그 겨울 저수지 낚시를 시작으로 플라이 낚시꾼이 되었다. 생면부지의 낚시꾼들은 모두 나의 스승이었고, 선배였던 덕에 그 이후 계곡도, 강도 다니며 낚시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때 도움을 주었던 여러 낚시꾼들을 나는 여전히 대부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아마도 기억할지 모르겠다. 어느 해 겨울에 웬 여자 하나가 낚싯대를 둘러매고 와서 버벅대길래 조금씩 가르쳐 줬었지,라고 말이다.
이제는 저수지 낚시를 가지 않은지 여러 해가 되었다. 계곡의 자유로움에 빠지고 나니 이제 저수지의 일렬로 선 낚시꾼들 사이에서 낚시하는 뻘쭘함은 견디기 어렵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겨울이면 가끔 그 겨울의 낚시터를 종종 생각한다.
그 겨울 추위 속에 낚싯대 끝엔 얼음이 달리곤 했다. 그래도 참 열심이었고 신이 났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여자들도 더러 하는 플라이낚시지만 그 시절엔 온통 남자들 뿐이었다. 그래도 그사이에 서서 겨우 발 앞 3미터에 미끼를 던지는 그 뻘쭘함도 괜찮았다.
지금도 나는 그리 실력 있는 낚시꾼은 아니다. 발 앞 3미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브래드 피트처럼 폼나게 낚싯대를 휘두르지도 못한다.
낚시하며 나이를 먹은 나는 이제, 너무 덥고 너무 추운 날은 낚시하지 않는다. 날씨 따위는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강원도로 날아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 온도, 풍속까지 체크하고도 최종적으로 귀찮음이라는 복병까지 물리쳐야 길을 나선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가끔씩 그 겨울의 저수지 낚시터를 떠올린다. 계곡에 얼음이 풀리길 기다리며 겨울엔 낚시를 하지 않은지 몇 해 되었지만, 어쩐지 그곳 저수지에 한 번쯤 가보고 싶어 진다. 생면부지의 유쾌하고 따뜻하며, 적당히 오지랖 넘치는 낚시꾼들은 여전히 낚싯대 끝에 달린 얼음을 털어내며 낚시를 하고 있을 것이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