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순례지를 도는 사람들이 말하는 3대 난코스가 있다. 추자도의 황경한 묘, 청도의 구룡공소, 그리고 울주군의 죽림굴 대재공소이다. 작년 갔던 추자도 황경한의 묘는 제주도에서 또 배를 타고 들어가는 추자도의 시간당 한대뿐인 유일한 시내버스를 타고 갔었다. 멀고 멀어서 난코스라고 했지만 가보니 굉장한 급경사를 상당히 걸어올라갔다. 그 황경한의 묘를 다녀온 이후 나머지 두곳의 순례를 미루고 미루었다.
하늘아래 첫동네라는 구룡공소는 맞은편에서 차가 왔다가는 비켜설곳이 없어 백미터쯤 뒤로 후진해야하는 낭떠러지 옆길이라더라 했다. 죽림굴 대재공소는 아예 차가 갈수 없어 등산을 해야한다더라 했다. 그래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에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때는 언젠가 오게 마련이다. 마침표를 찍어야 문장이 끝나듯 말이다.
그 두곳 중 하나인 죽림굴로 오르는 길은 억새로 유명한 영남알프스며 신불산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하산 코스로 이용하는듯 했다. 오르는 이는 거의 없고 간간히 완전무장한 등산차림의 등산객들이 몇 내려왔다. 그 역시도 몇사람 보지 못했으므로 산으로 오르는 길은 고요하고 호젓했다.
길가에 산밤이 떨어져 벌어진채로 있었다. 주워가는 이가 없었으므로 아마도 작은 동물들의 양식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그 순간 풀숲에서 고개를 내민 작은 눈과 마주쳤다. 청설모같았다.
힘든것으로는 최고봉이라고 일컫는 곳답게 등산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고, 그저 평지에서 걷는 것만 꾸준한 사람에게 몸이 제대로 서지지 않는 경사의 등산로는 너무 힘이 들었다. 굉장히 많이 걸어올라온것 같은데 지도앱을 보면 이백미터도 채 오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엔 막막해지곤 했다. 오르는것 조차 힘든, 이런 험하고 깊고 높은 산속 동굴에서 숨어 살면서도 신앙을 이어간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가 사실 나같은 사람은 짐작도 할수 없었다. 신앙을 말하고, 믿음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많고 큰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사는 지금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겨우 도착한 죽림굴 앞에 섰다. 입구는 기어들어가야할 정도로 좁았는데 동굴안쪽은 제법 넓다고 한다. 예전에 이 동굴에서 백오십여명이 모여 숨어 살았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이 깊은 산중에서도 발각될것이 두려워 불도 피울수 없었다고.
죽림굴 앞에 서서 멀리 바라다 보았다. 영남알프스라고 일컫는 곳이니만큼 산세가 굉장했다. 건너편 산꼭대기의 하늘이 눈높이에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고, 구름이 이리저리 바람에 실려다니며 산에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을 한참 바라봤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때처럼 숨이 차고, 폐가 터질것 같지는 않았지만 대신 급경사였으므로 다리가 후들거려 조심스러웠다. 내려갈때는 쉽겠구나, 하며 올라왔지만 역시 내려가는 일도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늘 그렇듯 같은 길인데도 내려올때는 참 빨리 내려오는 기분이 든다. 내리막길의 가속도 때문이기도, 이미 아는 길의 낯익음 때문이기도, 해냈다는 가벼운 마음때문이기도 하겠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라는 고은 시인의 싯구절을 생각했다. 올라갈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올때는 볼수있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싶었다.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마음의 여유, 턱끝까지 숨이 차는 등산길보다는 그래도 하산길에 가질 수 있는 숨의 여유덕에 주변 풍경이 그제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나 역시도 내려오는 길에 풍경이 더 잘보이고, 건너편 산의 구름 그림자가 옮겨다니는 것을 더 많이 보았으며, 나무와 풀과 작은 짐승의 소리를 더 유심히 보고 들었다.
차를 세워놓은 순례길의 초입에 도달했을때, 아직 순례지가 몇곳 남아있긴 했지만 가장 힘들다는 곳을 완주하고 난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정도로 가벼웠다. 아직 돌아보아야할 순레지가 남았으므로 마침표가 찍힌 것은 아니지만, 길고 숨찬 문장사이 쉼표하나를 제자리에 찍어준 기분이었다.
사실 그리 내세울 신앙인이 아닌 나로서는 믿음을 가지고 순례를 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스탬프를 찍는 재미와 스탬프를 찍어야 한다는 투지가 뒤섞인 시작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순례지를 찾는 발걸음은 이렇게 쉼표 하나쯤 찍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려오는 일을 생각한 하루였다. 지금이 내 인생의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는 알수 없다. 그 어느 경사로에 서서, 그 어느 방향으로 걷고 있는지 알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다만 인생의 마침표가 찍힐때까지 적당한 자리에 쉼표를 넣어주고, 알맞은 자리에 문장부호를 넣어주는 일을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