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까지 라벤더가 절정이라고 했다. 그깟 라벤더, 해마다 피는 것을..이라고 하지만 나이를 먹어보니 우리 인생에서 ‘그깟’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라벤더는 내년에도 피겠지만, 나는 내년 라벤더 꽃밭에 서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 인생이니 말이다.
그래서 작년에 보지 못했던 라벤더를 기다렸다. 라벤더를 너무 사랑해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6월이면 고성에 가득해진다는 라벤더 속에서 하루를 보내보고 싶었다. 먼 훗날 어딘가에서, 6월의 끝자락 즈음 보라색을 만나면 문득 오늘을 떠올리길 바라며 말이다.
라벤더 농장은 마을에 들어서서 한참을 들어가는데 길이 헷갈리지 않도록 계속 보라색 표지판이 나타났다. 평일 오전이었으므로 붐비지 않았지만 주말이라면 주차난과 정체로 꽤 복잡했겠다. 다행히 일방통행으로 입출차를 유도하고 있었다. 입구가 가까워오면 도로 바닥부터 보라색으로 바뀐다. 보라색 도로를 밟으면서부터 라벤더 속으로 들어가는구나 실감이 나는 것이다.
입구부터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유럽의 어느 농가 같은 분위기의 건물들과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을 지난다. 그리고 나면 펼쳐지는 넓고도 넓은 보라색 라벤더 밭. 마스크 안으로 허브향이 스며들었다. 이렇게 정원을 그림처럼 가꾸고, 꽃이 가득한 광활한 농장을 일구는 것은 쉽게 되는 일이 아니고, 빨리 이루어지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과 따뜻한 정성, 그리고 다정한 손길이 얼마나 오래 닿았을까 싶었다.
농장 문을 열자마자 들어왔으니 잠깐은 호젓했다. 하지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내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셔터 소리로 수선스러워진다. 꽃은 꽃밭에만 피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화사해서 모두 꽃 같았다. 어르신 일행이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느냐고 하셨다. 사진을 부탁하는 분은 점잖았고, 밝은 표정의 일행들은 벤치에 앉아 먼저 포즈를 잡으면서도 눈길은 꽃밭에 가 있었다. “이쁘다, 너무 이쁘다” 소리를 계속하셨다. 내 눈엔 그 어르신들이 라벤더 꽃보다 더 화사하고 이쁘셨는데 과연 제대로 찍어드렸는지 모르겠다. 그분들의 하루도 꽃처럼 오래오래 남기를 기원했다. 그해 고성에 라벤더가 가득이었잖아,라고 먼 훗날에도 미소와 함께 추억할 하루 말이다.
꽃밭 사이로 산책로가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꽃밭 안에 들어간 것 같다. 꽃밭 사이를, 꽃들 사이를 거닐었다. 구름 낀 하늘이 맑아졌다가 다시 구름이 몰려왔다 하였다. 꽃밭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만 꽃밭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팬데믹이 오기 얼마 전 삿포로를 여행했었다. 삿포로의 라벤더가 유명해서 찾아갔는데 사람도 많고, 라벤더도 많았다. 온통 보라색으로 가득했다. 관광버스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갔다.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가 뒤섞여서 시끌시끌했으나 화창한 하루였다. 보라색 천지인 그곳에서 오늘처럼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날도, 오늘도, 라벤더 아이스크림은 참 빨리 녹았다.
고성의 라벤더를 보며 몇 해 전 삿포로의 라벤더와 함께한 하루를 떠올린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또 어느 라벤더 앞에 서서 오늘을 추억할지도 모르겠다. “그해 6월 끝자락에 고성에 가득하다는 라벤더를 보러 갔었지. 그곳에서 삿포로의 라벤더를 떠올렸었어.”라고 말이다. 그렇게 인생은 이어지고, 먼 훗날까지도 꼬리 물듯 추억도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아련하고 그리운 날들이 그렇게 많아지면 좋겠다.
- “중앙일보 더오래”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글 : 전명원 (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