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에게 여의도는 곧 여의도광장이었다. 어른들을 따라 놀러 가 본 넓고도 넓은 아스팔트 광장이 기억난다. 드넓은 광장에 섰을 때 마치 바다 앞에 선 듯 막막하고도 벅찬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다닌 학교를 다시 찾아가면, 마치 걸리버가 된 듯 모든 것은 작게 보이고 조그마하게 느껴지지만, 여의도 광장이라면 내가 아이가 아니었더라도 그 넓은 광장에선 막막하고 벅찬 기분이 들었을게 분명하다고 가끔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과외수업을 받던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방학에 여의도광장을 데려갔었다. 엄마를 따라가서 형제들과 뛰어놀았던 여의도광장의 즐거움과 광활함을 기억했기에 아이들에게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늘 없는 그 땡볕에서 아이들은 어려서의 나처럼 이리저리 마구 뛰어다녔다. 막힌 것, 걸리적거리는 것 없는 광장에서 예전의 나처럼 아이들도 자전거를 빌려 타며 신나 했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다들 기진맥진해서 쿨쿨 잠이 들어버릴 정도였는데 성인이 되어서 만난 아이들은 예전 여름방학의 그 뜨겁던 여의도 광장을 여전히 기억하며 웃었다.
그 여의도광장은 이제 없다. 요즘 아이들은 아마도 그 옛날 여의도공원 이전의 광장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광장은 이제 공원이 되었다. 흉물스럽기만 한 시커먼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푸른 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되돌려주었다고 했다. 그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에는 비행기 활주로로 쓰였다고 하는 여의도 광장. 그 이후 5.16 광장으로 불리었던 여의도 광장이다.
공원이 광장이던 시절, 그곳에선 국군의 날이면 육해공군의 시범 행진이 있었다. 군대 행렬, 탱크와 장갑차등을 내세운 신형무기들의 행진, 그리고 광장 위를 날던 전투기들의 에어쇼가 생생하다. 대통령 선거운동 같은 유세의 현장이 되기도 했고, 대규모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교황께서 직접 미사를 집전하여 그 기념비가 남아있기도 하다. 광장은 그렇게 있었다. 때로는 자의로, 때로는 타의로 가득 찼던 광장이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부질없지만, 여의도 광장이 그 광활함으로 그대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한다. 광장은 어쩌면, 태생과 달리 나이를 먹어가며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광장에선 군사 퍼레이드가 열릴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가 자라는 드넓은 들판이 될 수도 있다. 자유를 상징하고, 자유가 가득한 공간이 될 수도 있었겠다. 주말이면 사방에서 소소한 버스킹 공연이 열리거나, 달빛이 내려앉은 봄밤이면 록 페스티벌이 열렸을 수도 있다. 아기자기한 플리마켓들이 열리며 번개장터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재미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광장을 잠시 상상해본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아마도 광장 자체가 아닌 그곳에서의 추억의 시간일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손 잡고 놀러 가 본 여의도 광장.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찾아갔을 때 신나서 집에 가는 것도 잊고 놀던 그 밝은 얼굴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막힘없이 뛰어다니고, 자전거를 탔던 여의도 광장의 뜨거운 햇살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가끔, 여의도 광장이 그립다.
글 : 전명원 (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