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정이 성지, 신유박해 이후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은 곳이었다는 성지엔 중고등학교가 세워져 운영되다가 시 외곽으로 이전 후 현재는 성지터만 남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가 헐리며 유일하게 남은 체육관 건물 앞으로 작은 성지터엔 포근한 봄바람이 불었다.
할머니 네 분 이서 아이처럼 웃으셨다. 작은 배낭에서 아마도 간식일 무언가를 자꾸 꺼내 놓으시며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들. 봄의 소녀들 같다. 숲정이 성지는 그렇게 평화롭고 편안하게 그곳에 있었다.
엄마는 매달 여고동창모임을 했다. 모두 할머니가 된 여고 동창생들이 종로 3가 냉면집에서 모여 웃고 떠들며 한때를 보내는 게 큰 즐거움이라며 엄마는 그렇게 매번 서울 가는 지하철을 탔다.
“우리도 모이면 느이들하고 똑같아. 다들 할머니가 되었어도, 옛날 어릴 때랑 같아.”
엄마가 모임에 다녀오면 친구분들의 이야기로 며칠은 수다가 이어졌다. 누구네 손주가 대학에 갔다더라, 누구는 넘어져서 큰일 날 뻔하였단다.
친구분들이 하나둘 아프기 시작했다. 어느 친구는 쓰러져 그대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했고, 또 누구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입원 했다는데 통화가 쉽지 않다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엄마가 아팠고, 종합병원 의사는 복수 천자가 가능한 요양병원을 알아보시라며 병실을 내어주었으면 하는 표현을 에둘러했다. 입원한 엄마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 데도 연락하지 말라하셨는데 연락할 일가친척도 거의 없었다. 내 식구는 나의 식구였으므로, 내가 엄마에게 갖는 애정과 책임감을 똑같이 갖는 것 까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는 엄마의 식구였다. 역시 엄마의 식구인 아빠는 이미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언니는 이역만리에 있었다.
어느 날 출근한 사이에 엄마와 가장 친한 여고동창 친구분이 다녀 가신 후 전화를 주셨다.
“우리, 둘이서 붙잡고 많이 울었어…”
엄마는 내 앞에서 나를 붙잡고 그렇게 많이 운 적은 없었다. 두 분은 내가 엄마를 알 수 없었던 십 대 시절의 모습, 생각을 기억할 것이다. 십 대 소녀의 마음을 여전히 가졌지만, 늙고 병들어버린 노년의 모습도 서로 내 모습인 듯 보았을 것이다.
늘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도 소녀였고 어린아이였다는걸 몰랐다. 내가 엄마의 식구로 책임감을 먼저 느낄 때, 엄마도 나의 엄마인 모습을 보여주려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숲정이 성지를 다시 둘러봤다.
슬프고 아팠던 이야기를 담은 채 성지터엔 소녀처럼 웃는 할머니들이 있고, 주인을 따라온 작은 강아지가 뛰어다녔다. 초로의 부부가 손을 잡고 천천히 잔디밭 위를 거닐기도 했다.
있던 것이 사라진 자리는 터로 남는다. 어떤 터엔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어떤 터는 돌보는 이 없이 버려지기도 한다. 또 어떤 터는 그저, 잊힌다.
한 사람의 생애가 끝나고 나면 남은 이에게는 그의 추억이 남는다. 추억을 가진 남은 이의 세대 역시 무한한 것은 아니어서 한두 세대쯤 지나고 나면 그 한 사람의 생애는 잊힌다. 잊힐 생의 터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터를 딛고 서 있고, 봄바람이 불어온다. 오늘도 이렇게 순례지를 돌아보았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