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임진각에 곤돌라를 타러 갔다.
북녘땅에 두고 온 가족이 있는 실향민은 아니지만, 통일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있든 없든 한국인에게 있어 임진각은 어쩐지 조금은 특별한 감흥으로 다가오는 곳이긴 하다. 파주로 가는 길은 ‘자유로 귀신’으로 유명한 그 자유로를 지나고, 도로변 철망에 가시를 두른 모양새를 보며 이곳이 전방 근처임을 실감하게 된다.
DMZ 평화 곤돌라는 임진각에서 탑승해 임진강을 건너 북측 하차장에 내려 조금만 언덕을 오르면 전망대가 있어 풍경을 조망한 후 다시 되돌아오게 되어있다.
코로나로 인해 직원들은 계속 소독을 하고 있었고, 6인 정도 탑승할 수 있는 곤돌라는 4인 이상 태우지 않았다. 비무장지대인만큼 신분증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써야 하는 확인서도 있고, 매표소에서 지불하고 나면 놀이공원처럼 종이 팔찌를 주는데 특이한 건 팔찌에 이름이 떡 하니 찍혀 나온다는 것. ^^; 잠시 분단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임진강은 꽁꽁 얼어 있었다. 수확이 끝난 농경지엔 새떼들이 많았다. 곤돌라가 지나가며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갔다는 다리도 보이고.. 분단지역이니만큼 지뢰 경고판도 보인다. 종전 이후 세대인 나에겐 비현실적이고, 실감 나지 않는 풍경들이긴 하다.
봄 날씨 같다. 평화정을 지나 전망대에서 이곳저곳을 바라본다. 통일에 대한 절실한 감흥은 없는 세대이지만, 우리를 비롯해 모두에게 늘 따뜻한 봄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아주 오래전 헤이리가 생긴 초반에 한번 와봤던 것이 내가 파주에 왔던 기억의 전부인데, 이번에 검색하니 의외로 맛집이 많았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오두산 막국수’. 막국수도 간이 세지 않아 좋았지만, 녹두전에 어리굴젓을 얹어먹는데 이 맛이 정말 좋았다. 운전만 아니었으면 막걸리 몇 병은 마셨을 텐데 아쉬울 정도다.
그리고 헤이리. 참 오랜만에 가본 헤이리는 계절 탓이었을까, 코로나 탓이었을까, 기분 탓이었을까. 따뜻한 계절에 붐비던 헤이리를 기억하고 있어서 다소 조용했지만 독특한 건물과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는 여전했다. 생각해보면 그 예전과 달리 이런 독특한 분위기의 건축물로 가득한 거리들이 여기저기 많아져서 더 이상 이곳만의 특유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헤이리 마을 이곳저곳을 거닐기엔 너무 따뜻하던 날씨. 건물마다 주차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주차구역을 만들어 두어 차를 세우고 걷기 좋은 동네이다.
걷고 또 걷다가 맘에 드는 카페에서 플랫화이트를 마시며 딱 일 년 전 설 연휴의 런던을 이야기했다. 코로나가 막 시작되려는 시기였고, 이렇게 들불처럼 번지며 일 년을 넘길 거라 생각 못했던 시기였다. 우리는 런던을 매일 걷고 또 걸었고, 다리가 아프면 카페에 들어가 플랫 화이트를 한잔씩 마셨던 이야기를 했다.
일 년쯤 지나 내년 설에 우리는 어디에 앉아서 오늘을 이야기하게 될까. 짧았던 하루짜리 파주 여행을 마치며 돌아오는 길엔 내년 이맘때 어디에선가 밝게 웃는 얼굴로 또다시 플랫 화이트를 마시며, 런던과 오늘의 헤이리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누었다.
글 : 전명원 (작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