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 종로에 갔다. 오늘은 좀 걸을 예정이었으므로 걷기 전에 일단 먹어두자며 (그간 쌓아둔 것은 다 어쩌고) 태극당에 먼저 갔다. 강남역 뉴욕제과는 친구들 만난다고 자주 갔어도 태극당에 올 일은 없었는데, 텔레비전을 사랑하는 남편이 보던 프로그램에 나왔다며 태극당을 가보자고 했다.
레트로가 유행이라고 젊은이들도 많이 온다더니만, 이른 시간에 가서 그런지 우리 또래부터 어르신들이 많았다.
-굉장히 이질감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야. ㅋㅋㅋ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마시고 종로3가로 가서 광화문까지 중간중간 들러가며 걷기를 시작한다.
시작은 종로성당.
마침 미사 중이었는데 우는 어린아이 하나를 입구 로비에서 어르며 놀아주고 계신 수녀님을 봤다. 얼마큼의 믿음이 있으면 성직자가 되는 것일까.
열 명 남짓의 동호회 회원이기는 하나 늘 혼자서만 낚시 다닌다고 잘라버린다, 강퇴시켜버린다는 협박을 받고 있는 낚시 모임이 있다. 모임의 한 분은 가끔 아들을 데리고 왔다.
초등학생 때 물었다. 꿈이 뭐야?
수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놀랐다. 신부님도 아니고 왜 수사가? 라는 나의 물음에, 기도할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해서 더 놀랐다.
몇 년 후 중학생이 된 그 아이를 다시 또 계곡에서 만났다.
아직도 수사가 되고 싶어?라는 내 물음에 손사래를 쳤다.
에이~ 정규직이 짱이에요! ㅠㅠ
ㅎㅎㅎㅎ 아이들 꿈이야 열두 번도 더 바뀌는 법이지. 또 모른다. 몇 년 후 어느 날, 그 녀석이 또 무엇이 되어 나타날지.
종로 3가 종로성당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단성사 – 종각- 광화문까지 가야 한다. 성당에서 나오니 종묘, 탑골공원을 지나게 되었는데 어르신들이 길가에 좌판을 깔고 장기를 두고 계셨다.
어느새 제과점에, 거리에 모인 어르신들이 눈에 보인다. 사람은 제 눈높이에서 세상을 본다. 나이를 먹으며 달라진 눈높이는 내게 또 다른 것을 보여준다. 나이를 먹은 만큼 더 넓고, 더 멀리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기를.
ㅇㅇㅇㅇㅇㅇ
다음번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종로복떡방이 있어 들어갔다.
결혼 전 남편과 종각에서 놀다 보면 늘 가는 곳은 종로 서적, 종로복떡방이었다. 방학 때는 시사영어학원 등록해두고 가끔 거기 앉아 땡땡이도 쳤던 것 같다.
이제는 없어져 버린 종로 서적 앞을 지나며 아련했다.
그 시절엔 핸드폰도 없이 다들 잘 만났었어,라며 라떼는 말이야 놀이도 했고, 친구들과의 추억도 많은 거리인데 이제 올 일이 없으니 그나마 종로복떡방이 아직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잠깐 생각했다.
빌딩 사이로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광화문까지 걸었고, 청진옥에 들어갔다.
엄마는 어린 시절 청진옥 근처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릇 들고 가서 청진옥 해장국 사다 먹곤 했다고 하셔서 교보문고 놀러 오면 청진옥 해장국을 포장해가서 드리곤 했다.
이제 수원에도 교보문고가 많으니 굳이 서울 교보문고까지 오지 않는다. 엄마 아빠도 안 계시니 청진옥 해장국을 포장해갈 일도 없다.
우리 둘은 묵묵히 해장국을 먹었다. 언젠가 오늘을 이야기하겠지. 우리 종로성당부터 광화문까지 걷던 날, 그때 오고 오늘 처음이지, 아마… 이러면서 말이다.
기억할 것이 늘어나고, 추억할 거리가 많아진다. 나쁘지 않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들렀고, 늘 그렇듯 책보다 예쁜 문구에 손이 먼저 나갔다.
책들과 사람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다 문득, 이 많은 책들을 누가 다 읽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 라는 교보문구 입구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