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는 읍성으로 먼저 기억된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 나는 해미읍성이 곧 해미순교성지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서산이 고향이었는데 그 두 곳이 같지 않다는 내 말에 자기도 처음 알았다고 했다. 하긴 천주교 신자 흉내를 내는 나도 이제야 안 것을 서산이 고향인 사람이 몰랐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해미순교성지는 잘 가꿔져 있었다. 순교성지라는 곳이 어쩔 수없이 슬프고 아프며 무서운 사연들이 남은 곳인데, 가을볕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 화사한 가을볕은 그 시절에도 그랬을 것인가.
해미성지를 가려한다는 말에 친구는 어린 시절 해미읍성 성 둑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아 늘 아버지께 혼났던 일을 이야기했다. 왜 그렇게 야단치셨는지 그 시절엔 알 수 없었는데 지금 해미읍성 성 둑길을 가보면 난간도 없는 높은 둑길을 자전거로 내달리며 놀았으니 이제야 아버지가 왜 그렇게 야단치셨는지 알겠다고 했다.
대학에 입학해 처음 사귄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까지와 달리 대학은 각 지방에 모인 친구들이었으므로 저마다 자라온 환경이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1학년 겨울방학에 서산의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민속촌에서 본 것 같은 시골집이었고, 아궁이 걸린 부엌이었다. 친구 어머니는 먼 데서 친구들이 왔다며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갈치를 튀기듯 구워주셨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엔 뭐 들려 보낼 것이 없어 어쩌냐시며 마늘을 봉지에 넉넉히 담아 들려주셨던 기억이 난다.
시골의 경험이 없는 나에게 친구 집은 새롭고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친구는 우리 집에 처음 왔던 날을 말해주었다. 식탁에 앉았는데 너희 어머니가 식탁에 매트를 하나씩 깔아주시고 카레를 해주셨었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카레를 따로 담아주셔서 밥 위에 부어 먹었지. 신기했어,라고 했다.
나는 친구의 시골집이 신기했고, 친구는 내가 살던 아파트 도시 집이 신기했다. 서로의 집에 처음 갔던 날을 소소한 것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우리는 그날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아직도 친구의 어머니는 서산 그 옛집에 사신다고 했다. 아궁이를 기억하는 나에게 친구는, 그 옛집은 이제 현대식으로 많이 수리했기에 더 이상 아궁이는 없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친구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것이 더 많아지신다고 한다.
해미성지의 가을볕 아래를 걸으며, 친구 어머니의 행복한 추억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어머니 마음속에 남아있었으면 했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