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 군부대안의 성당에 다녔다. “군종병 아저씨”라고 부르며 우리들이 졸졸 따라다니던 군인 아저씨의 집안은 천주교 성직자를 여럿 배출한 독실한 천주교 가정이라고 했다. 막상 아들들 중엔 성직자 되겠다는 아들이 없어 서운해하셨던 아버지가 막둥이인 군종병 아저씨에게 기대를 걸고, 너 사제가 되겠느냐, 하셨을 때 아저씨마저 그건 싫다고 해서 아버지가 엄청 실망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군종병 아저씨는 , 참 잘 생기고 다정다감한 성격이어서 맡고 있는 교리반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고, 엄마들마저,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신부님이 되면 아깝지.. 하시며 웃었던 기억도 난다.
잘생겨서 신부님이 되기 아깝다는 우스개 소리를 크면서도 가끔 생각하고 혼자 웃었다.
그리고 귤을 벗기고 난 껍질을 볼 때도 한 번씩 군종병 아저씨를 생각했다.
아저씨는 겨울에 난로 위에 커다란 주전자를 올려 모아두었던 귤껍질을 끓여서 아이들에게 주었다. 성당 뒤편 사무실에선 겨우내 귤차 향기가 났었다.
그때도, 지금도, 귤껍질이 약이 된다는 건 알아도 굳이 귤껍질을 끓여 먹지는 않는데 귤껍질을 보면 늘, 어렸을 때 군종병 아저씨가 끓여주던 귤차 생각이 나곤 한다.
어느 해인가 성지 소풍 간 것이 ‘ 미리내 성지’였다.
그때의 미리내 성지 풍경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의 성지 모습처럼 단장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포장도로도 아니었던 기억이 있고, 주변도 아주 오지 시골마을 같았다.
미리내성지와 함께 떠오르는 기억은, 누에고치처럼 생긴 과일 열매였다. 성지 입구에서 동네 할머니들이 길에 내놓고 팔고 계셨고, 누가 사주었는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손에 쥐어준 그 과일 열매가 징그러우면서도 신기해서 어쩔 줄 몰랐던 기억.
가르고 벌려서 안의 과육을 입에 넣으면 자잘한 씨앗들이 많았다. 나중에야 그것이 으름 열매인가 보다 하였지만 내 기억과 사진을 맞추어 본거라 정확하진 않다.
오늘의 미리내 성지엔 가을이 데려온 바람이 적당하게 불었고, 성지 특유의 침묵과 고요함을 좋아하는 나에겐 짧았지만 꽉 찬 시간들.
성지 입구에 누에고치처럼 생긴 열매를 파는 동네 할머니도 안 계시고,
성지 건물 옥상 난간에서 아이들과 장난치다가 신부님께 한 소리 듣던 잘 생긴 군종병 아저씨도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을 세월이다.
귤차를 끓이는 주전자는 없지만 , 어쩐지 올 겨울엔 귤껍질을 잘 말려 끓여 마셔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귤차 향기에, 마법처럼 열 살짜리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갈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1 thought on “한국기행 _ 경기도 안성 미리내 성지”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