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우리나라 소도시 여행의 목적지는 충남 논산시 강경읍.
강경은 젓갈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도시지만, 젓갈 말고는 뭐가 있을까 잘 떠오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바다에 면한 고장이 아니므로, 금강줄기에 포구에는 젓갈이 발달했을 것이다.
1900년대에 개설 되었다는 시장은 한때 지나가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번성 했다고.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마음으로 기대는 얼치기 천주교 신자인 나는,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힌 올해에는 대신 국내의 천주교 순례지를 돌며 순례도장수첩의 스탬프를 모으고 있다.
늘 그렇듯이 여행지를 하나 정하면 근처에 순례도장 찍을 곳이 있는지 확인한다. 가끔은 순서를 바꿔서 먼저 순례지를 정하고 근처의 볼거리나 맛집을 알아보기도 한다.
첫 목적지는 강경에서 차로 7분 거리로 가까운 나바위성지.
나바위성지는 김대건 신부님의 첫 착좌지라고 한다. 성당은 기존의 한옥을 증축한 형태여서 독특하게도 1층외벽에 처마의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다. 벽돌로 단정한 성당은 고풍스럽다.
성지에선 예쁜 십자가 길을 발견할 때도 있고, 특별한 소나무숲 그늘에서 미사를 드릴때도 있었지만 나바위성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예수님상의 시선을 따라 내려다본 들판의 정경이었다.
엄청 아름답고 멋진 산이나 바다나 강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시선을 따라 내려다보는데 굉장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심호흡을 크게 했다.
강경시내로 들어와 오늘의 첫 목표인 젓갈백반을 먹었다. 강경시내에는 젓갈백반하는 식당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만나식당.
만나식당은 사람수에 따라 젓갈가지수가 달라진다. 2인 10가지. 3인15가지. 4인 20 가지.
값은 같다. 아, 왜 우리는 달랑 둘인것인가.. ㅋ
젓갈도 나무랄데 없이 맛있었고, 비주얼은 성의없게 끓여낸 것 같은 된장찌개도 의외로 맛이 좋았다.
나는 밥한공기를 다 비웠고, 남편은 두공기를 흡입했다. 젓갈이 밥도둑이란 말은 맞는 것 같다.
너무 먹어서 부른 배를 소화도 시킬겸, 차는 시장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채 걸어서 죽림서원으로 왔다.
이름처럼 서원 뒤에 대나무숲이다. 서원앞을 지나는 차도 별로 없어서 입다물고 가만히 대나무 그늘아래 있으면 솨아솨아… 댓잎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가 들린다.
땀을 식히는 바람만으로도 좋은데… 소리까지 들려주는 바람이라니…
서원 뒤의 죽림을 조금만 오르면 임리정이 있다. 정자의 툇마루는 낡고 옹이진 마루였는데 잠시 앉아서 하늘을 봤다.
정자의 맛은 이렇게 앉아 바라보며 멍때리는 것인지도.
우리나라 건축물중에 정자라는 것은 운치있고 참 멋지다.
내려와 조금 더 걸으면 팔괘정이 나온다.
여기도 임리정처럼 강학장소인데… 대체 이렇게 풍광 좋은 곳에서 공부가 된단 말인가? 풍광좋은 곳에선 노는거지 공부하는게 아닌데… 라며 웃었다.
팔괘정에서 내려와 젓갈시장까지 또 걸었다.
네이버지도를 들고, 양팔 벌리면 닿을듯한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걸었는데… 참 정겨운 골목이었다.
남편은 어려서 살던 골목같다고 좋아했다.
나는 사실 이런 골목은 살아본 적이 없다. 군인이셨던 아빠덕에 어려서 거의 관사에서 살았으니 일반 주택가에 살았던 기억 자체가 별로 없고. 그나마 살았던 곳들은 도로에서 두세집만 들어가도 아빠가 기겁을 하게 싫어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남편에게는 추억돋는 곳, 내게는 재밌고 신기한 곳으로 동네골목길을 한참 걸어서 강경 젓갈시장에 도착.
시장내의 골목마다 젓갈을 팔고 있다. 김장을 할 때가 되어서 그런지 다들 맨앞의 드럼통에 들은 새우젓을 먼저 보여주시려고 했다. 민망하지만 김치를 담궈본 적이 없으므로 우리가 찾는 것은 밥도둑 반찬 젓갈들이다.
청어알젓, 낙지젓, 명란젓, 그리고 어리굴젓을 샀다. 계산을 하려고 하니 청어씨앗젓갈 한통, 커다란 무 짱아찌 두팩을 서비스로 더 주신다. 야쿠르트도 계속 주시며 마시라고 권하시고, 있는지도 몰랐던 공영주차장 주차권도 먼저 챙겨주시고 굉장히 친절하고 재미있으셨다.
젓갈집이 즐비한 시장안에서 제일 장사가 잘되는 집이었는데, 그 바쁜 와중에도 따라나오시며 2021년 달력을 건네주셨다. 잊을 뻔 했다시며 잘되는 집 달력 걸어두면 좋다고 한마디 덧붙이신다. 장사 잘되는 집의 자신감이고, 여유고, 인심이다.
잘되는 집은 역시 이유가 있는 듯.
즐겁고 여유있게 돌아다닌 또 한곳 우리나라 소도시 여행은 이렇게 느긋한 하루로 마무리 지었다. 젓갈을 흡입했더니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선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셔댔지만.
그리고 조수석에서 졸다깬 남편이 말했다.
우리 다음주엔 어디갈까?
또다른 한국기행, 소도시여행을 보시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