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보내온 엽서엔 바티칸의 베드로 광장이 담겨있었다. 바티칸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엽서를 보내주고 싶어 그 사진이 담긴 엽서를 골라 내게 보낸 것이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유럽, 그중에서도 바티칸의 열쇠 모양 광장을 거니는 언니와 엄마를 상상했다.
언니가 보낸 엽서를 여러번 보았다. 책이며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었다. 진짜 유럽, 그리고도 바티칸에서 그곳의 소인을 찍어 내게로 날아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바티칸 광장이 담긴 엽서는, 언니와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온 엄마와 별 차이 없이 집에 도착했다. 뒤이어 집에 돌아온 언니와 엄마의 카메라에서 유럽의 많은 풍경이 쏟아졌다. 파리, 로마, 런던, 스위스… 언니와 엄마가 등장하는 사진에서 실재하는 유럽이 느껴졌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가본 적 없지만 늘 가보고 싶은 외국의 멋진 풍경들은 그렇게 한컷 사진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나는 언니보다 먼저 결혼했다. 아이가 어렸고, 시간은 손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같이 늘 바쁘기만 했다. 비록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시절이 아니기도 했지만, 여행보다는 분양받은 아파트 중도금 한번 넣는 것이 더 시급하던 젊은 날이기도 했다.
아이가 대학에 갔고, 더 이상 분양중도금의 압박이 없는 나이가 되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여행의 목적은, ‘확인하기’였다. 교과서에, 혹은 잡지에 실렸던 유명한 유적지며 장소를 내 눈으로 보고싶다는 것이 내 여행의 이유였다. 물론 사는 일은 여전히 바빴다. 비수기의 저렴한 항공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극성수기에, 그나마 싼 항공권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가는 곳마다 엄마에게 이메일로 사진을 전송했다. 예전에 언니에게 바티칸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엽서를 받던 날을 생각하며 말이다. 여전히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엄마였지만, 이메일을 열어 내가 보낸 사진을 보고 나에게 문자를 보내시곤 했다. 이쯤에 우리 딸이 있겠군. 그곳은 나도 예전에 너희 언니랑 갔던 곳이야. 이런 내용의 이메일 답장을 받기도 했다.
몇 해 전 드디어 꿈꾸던 로마에 갔다. 오래전 언니에게 받았던 바티칸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엽서를 생각했다. 바티칸을 가기 전날 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상비약을 꺼내 볼 일 없던 나였는데 소화제를 비롯한 온갖 약은 다 꺼내 먹어가며 버텼다.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뒤척이다 새벽 여섯 시, 호텔 앞의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아침에 좀 나아진 컨디션으로 바티칸에 갔다. 언니가 보내준 엽서속의 열쇠 모양 광장을 보기 위해선 쿠폴라에 올라가야 했다. 간간이 쥐어짜는 듯한 복통이 남아있었으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보고, 기어이 쿠폴라 정상에까지 올라가 열쇠 모양의 베드로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엽서에서 보았던 그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듯한 좁은 쿠폴라 계단을 올라가야 전체가 보이는 그 광장의 풍경은, 그대로 거대한 한 장의 엽서였다.
엽서 사진으로 오래 나에게 남아있던 그 성 베드로 광장을 보고 돌아오니 봄이 시작되었다. 팔순을 넘긴 아빠의 치매가 심해졌고, 엄마는 갑자기 수술하고 입원을 했다. 함께 일 년을 아프셨고, 그다음 해 봄에는 이십여 일을 사이에 두고 두분 모두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다. 바티칸에서도 나를 괴롭혔던 복통의 원인은 위경련이 아닌 담석증이었다. 부모님이 떠나시고 그해에 나는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았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던 그 시기가 지나고 나는 다시 여행을 다녔다. 내가 교과서에서, 책에서, 혹은 언니가 보내주었던 그 엽서 한 장처럼 오래 남은 풍경을 내 눈으로 보았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 더 많은 것을 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잊고 살지만, 삶은 유한하다. 여러 가지 일을 겪은 시기를 보내고 나자 이제는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한다.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고, 그나마도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나는 욕심을 덜어내고 , 마음의 여유를 선택했다.
팬데믹이 닥치며 잠시 여행을 멈추었다. 하지만 꼭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여행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여행을 한다. 마음속에 오래 남을 새로운 엽서를 꾸준히 받는 것이 내 여행이다. 그리고 이제는 멀거나 혹은 가까운 여행길에서 돌아오면,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내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쓴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바티칸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엽서가 들어있다.
글 : 전명원 (작가, 에세이스트) 저서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