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방울의 물이 수면에 떨어지면 파장이 생겼다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지금이 가장 소중하지요. 지금 보고, 지금 듣고, 이렇게 어딘가를 다닐 수 있는 지금이 가장 감사한 겁니다.”
평일의 이른 아침.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절은 거짓말처럼 고요함 속에 있었다. 심지어 내가 여태껏 가보았던 그 어느 절 보다 더 고요했다.
예전에 찾았던 해인사의 절마당에는 일종의 미로인 해인도가 있었다. 그 해인사 외에 절마당에 이리 독특한 풍경이 있는 절은 처음이다. 연못은 푸른 연으로 반이상 뒤덮여있었다. 연꽃이 깨끗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연못 위를 한 바퀴 돌게 되어있는 나무다리를 조심스레 디뎌가며 걸었다. 살짝 삐거덕한 느낌에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한두 해에 가꾸어지지는 않았을 이런 아름다운 절을 일구는 손길을 생각했다. 이곳에 보탰을 많은 마음들도 생각했다.
연못 위쪽에는 푸른 잔디밭을 가진 절집이 몇 채 있었으나 기도하는 도량이므로 출입을 삼가 주십사 하는 주지스님의 안내문이 있었다. 입구 기둥에 ‘왔다감’ 같은 류의 낙서들이 가득했다. 낙서를 삼가 달라는 안내문도 있었으나 이미 빼곡했다. 국립공원도 아닌 절이 유명해진다는 것은, 그리하여 관광지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인듯하다. 하지만 그 어떤 절에서도 기둥에 빼곡한 낙서를 본 일은 없다. 절집들이 있는 잔디 건너를 조용히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절에 딸린 찻집에서 차가운 대추차를 내어주시는 스님은 멀리서 혼자 왔다는 사람이 신기하셨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스님의 눈매가 참 밝다고 생각했다. 내가 수원에서 왔다고 말씀드리자 ” 아! 그곳이 삼성전자가 있는 곳이지요? 영통구가 맞던가요?” 하셨다. 지명으로만 알고 계신 건 아닌 듯 영통구가 매우 넓은 곳이더라고도 하셨다.
이제 여길 보았으니 다음엔 어디로 가느냐 하시기에, 올라가며 청주에 들를 참이라고 하였더니 “두 시간 채 안 걸려 가겠네요, 평일이니까요.” 하셨다. 스님이 다른 도시의 사정에 꽤 밝으시다고 문득 생각하다가 이내 이것도 편견이겠구나 싶었다. 옛 시절도 아니고, 스님들이 산속에서 불경만 읽으실 리도 없는데 말이다. 이런 느낌은 스님뿐 아니라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에게도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술을 엄청 좋아하시는 호탕한 신부님도 계셨고, 친구들과 아이들처럼 가요프로를 보며 즐겁게 이야기하시던 신부님을 뵌 적도 있다. 예전 어느 글에서 작가이기도 하신 수녀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주 오랜만에 동창을 만났는데 그 친구 말이 “너는 이렇게 성스럽게 되었는데 나는 이게 뭐니.” 라고 하셨다던가. 그 수녀님께서 무어라 대답하셨나는 잊었지만, 성직자들은 타인의 그런 시선까지도 감내해야 하는 분들 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하나 없는 평일 오전의 여유 덕이었을까. 스님께선 이런저런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마치, 이 사람에게 이 말이 필요하겠구나 아시는 분 같았다.
찰나에 지나가는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 오래 남았다. 뿐만 아니라 종교가 그 무엇이든 기도한다는 것은 비운 다는 것이니 나도 없고 남도 없는 허공인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허공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으나 그렇기에 무엇이든 채울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을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스님이 해주시는 말씀이 참 좋았다.
헤어질 때 스님은 합장하며 인사를 하셨고, 나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연못 입구의 ‘시절 인연’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팻말을 다시 보았다. 수선사 연못을 다시 한 바퀴 돌고 내려오도록 그 아침에 아무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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